모두가 공하다
개 공(皆 空)
오온설이 대두된 이유는 무아(無我)의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 오온 이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존재란 5개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이 각 요소들은 모두 비실체적인 것이므로 이와 같은 요소들로 이루어진 인간 존재 역시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모이는 성질을 가진 것[5온]은 모두 흩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 오온설은 무아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이며 이러한 오온무아설은 불교 가르침의 핵심인 고(苦)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답이 된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은 욕망 때문에 생기고 욕망은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 때문에 발생한다고 하셨다. 즉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 ‘나다’라고 하는 생각이 괴로움의 근본 원인이라고 하셨다. ‘나다’는 생각도 없고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내가 옳다’는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이해한다면 우리들은 무엇에도 집착할 것이 없으며, 분별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조견오온개공은 “오온의 실상은 모두가 공이다.”라는 뜻으로 이 경전의 핵이다. 오온개공은 즉 불심의 실체(實體)로 깨달음을 말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성, 즉 부처님의 실체를 보면 자기완성에 이른다는 의미이다. 부처님의 실체가 곧 오온개공이다. 그러므로 불생불멸하고, 부증불감이며, 불구부정이며 공이다.
일체를 모두 공한 것으로 비추어 본다는 의미로
현상적으로 본다면 나라고 하는 존재, 너라는 존재, 그리고 이렇게 우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조견해 보면 모두가 텅 비어 있어 공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일체가 공하다는 것을 비추어 볼 수 있는 지혜가 바로 반야이다.
아름다운 여자 직장상사가 있는데 이 여자를 사모하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미워하는 남자도 있다. 한번은 두 남자가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둘 다 얼굴에 밥알이 붙어있었다. 여자상사가 이것을 보고 씩 웃었다. 그 여자를 사모하는 남자는 여자가 자기를 좋아해서 웃은 줄 알고 흥분하였고, 그 여자를 미워하는 남자는 자기를 무시하고 비웃었다고 더욱 서운한 마음이 쌓였다.
하나의 같은 사물이나 현상을 놓고 이렇게 받아들이는 입장이 다른 것은 마음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실체(實體) - 얼굴에 밥알이 붙음 - 는 파악하지 못하고 실체위에 쌓여있는 마음[染心, 염심] - 좋아하고 미워하는 마음- 이 사실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조견오온개공이란 ‘실체위에 쌓여있는 마음[염심, 망심]을 걷어내고 실체를 보았더니’라는 뜻이다. 그 실체가 바로 부처님의 본질, 성(性)이다. 성은 곧 공이다.
그러면 좀 더 쉽게 현대 과학을 예로 들어 공(空)을 생각해 보겠다.
물체는 전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전자 따위의 입자들은 질량을 가지는 작은 덩어리이지만, 이것은 파동이라는 아주 미세한 떨림으로 바뀔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물질이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또한 모든 것은 변화 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고정된 입자라고 생각한 것이 어느새 파동이라는 떨림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은 어느 것도 고정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공(空)한 것이다. 이처럼 현대과학의 물리학도 불교의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교설, 그리고 공(空) 사상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고 본다. 앞으로 끊임없이 과학이 발전할수록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론적 뒷받침과 증명이 전개될 것이라 생각한다.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란 일체의 고액[번뇌]을 건너, 해탈, 열반에 이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이란 오온이 모두 공함을 비추어 봄으로써 깨달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경전에는 세 가지 괴로움과 사고(四苦), 팔고(八苦)가 있다. 일반적으로 괴롭다는 말은 그 성격상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사리불에게 여쭈었다.
“사리불이여, 모두들 고요 괴로움이라고 하는데 어떤 것을 고라고 합니까?”
“벗이여, 이와 같은 세 가지가 고이다. 그것은 고고(苦苦), 행고(行苦), 괴고(壞苦)이다.”라고 하셨다.
첫째, 고고(苦苦)란
괴로움의 괴로움이란 의미로서, 인간의 감각적인 괴로움을 의미한다. 즉 육체적 고통을 의미한다. 내 육체가 직접적으로 괴로움을 느끼는 것으로, 누군가에게 맞아서 아프고, 병으로 몸이 아프며, 배고파서 겪는 육신의 괴로움과 추워서 느끼는 괴로움 등이다.
둘째로 행고(行苦)란
행의 괴로움이란 의미로서, 변하기 때문에 겪는 괴로움이다. 삼법인 중 제행무상의 진리 때문에 오는 괴로움으로 모든 것이 항상 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괴로움을 말한다.
이 괴로움이 바로 불교의 고성제에서 말하는 괴로움과 가장 가까운 괴로움이라 할 수 있다. 불교에서 괴로움이라고 하면 육체적 괴로움이나 혹은 다른 어떤 괴로움을 의미하기보다는 일체 만유는 항상 하지 않고 반드시 변화한다는 진리에 따른 괴로움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며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괴로움이며, 늙고 병들어 예전처럼 한 십 년 정도 젊어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괴로움 등이 모두 행고에 속한다. 우리가 흔히 괴로움이라고 말하는 생, 노, 병, 사의 인생사고(四苦)가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셋째로 괴고(壞苦)란
부서지는 괴로움 이다. 항상 하기를 바라지만 일체의 법은 항상 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반드시 부서지게 되는 괴로움이다. 자연을 보면 성(成).주(住).괴(壞).공(空)하여 반드시 변하여 부서지게 되고, 인간을 보더라도 생.노.병.사하여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뿐 아니라 현재는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없어졌을 때 느끼는 괴로움도 괴고에 속하는데, 이는 우리가 재물, 지위, 혹은 명예 등을 상실했을 때 느끼는 괴로움이다. 돈이나 나의 소유물 등이 인과 연이 다해 나에게서 멀어질 때 느끼는 괴로움도 바로 이 괴고에 속한다. 이러한 괴로움 등은 괴고이면서 동시에 행고이기도 하다. 항상 하지 않고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경전에서는 괴로움의 성격상 세 가지로 나누고 있기도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고가 바로 사고(4苦)와 팔고(8苦)의 교설이다.
경전에서는
『태어나는 것은 괴로움이다. 늙는 것은 괴로움이다. 병드는 것도 괴로움이며, 죽어야 하는 것 또한 괴로움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 또한 고통스러운 일이다. 원한이 있는 사람과 만나는 것 또한 고통스럽다. 구하나 얻어지지 않는 것도 고통스러움이니, 요컨대 번뇌의 수풀 위에 뿌리를 박고 있는 내 몸이 존재하는 것이 고통이다. 비구들아, 이것이 괴로움이라는 진리이다.』 라고 설함으로써 여덟 가지의 괴로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생(生)은 태어나는 괴로움이며, 노(老)는 늙는 괴로움이고, 병(病)은 병드는 괴로움, 사(死)는 죽는 괴로움으로 이상 네 가지가 사고(四苦)이다. 여기에 다시 네 가지 괴로움을 더해 팔고(八苦)라고 한다.
그 네 가지는, 미워하는 대상과 만나서 괴로운 원증회고(怨憎會苦), 사랑하는 대상과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인 애별리고(愛別離苦), 원하지만 얻지 못해서 괴로운 구부득고(求不得苦), 마지막으로 오음성고(五蔭盛苦)는 오음이 치성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다. 오음이란 앞에서 배웠던 오온(五蘊)을 말한다. 다시 말해 오음성고란 나다하고 아상을 내세우는데서 오는 괴로움이다. 괴로움의 원인은 아상(我相), 아집(我執)이다. ‘나다’하는 상이 없다면 우리는 괴로울 것이 없다고 하였다. 모든 괴로움의 주체는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말한 인생팔고는 무조건 괴로움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아니다. 아상이 있는 중생들의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공부를 착실히 하여 일체 분별심과 산란한 마음, 일체의 경계를 맑고 밝은 참주인공의 본바탕에 일임하여 맡기고 방하착하며 살아간다면 인생은 고가 아니다.
이제까지 알아 본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을 되짚어 보면 조견오온개공을 실천하기 위하여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도일체고액할 수 있다는 실천적 가르침이다.
고 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