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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

금강경 2011. 10. 12. 06:32

                           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是故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이제부터는 서두에서 다루었던 오온(五蘊)을 비롯하여 십이처, 십팔계, 십이연기, 사성제 등 근본불교에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말씀하셨던 모든 교설에 대해, 대승의 공사상이라는 큰 진리 속에서 모두를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올바로 알아야 할 것은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설하신 모든 교설을 부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르침의 본질적인 면에서 볼 때, 현상계인 십이처와 사성제 등은 속제(俗諦)이며, 이러한 현상이 부정된 세계는 깨달음의 세계, 즉 진체(眞諦)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나와 내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현상에 대해 집착하거나 분별하지 말라는 뜻이다.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囑法)

 

  십이처는 안근(眼根)[눈], 이근(耳根)[귀], 비근(鼻根)[코], 설근(舌根)[혀], 신근(身根)[몸], 의근(意根)[뜻, 마음] 의 여 감각기관[육근(六根)]과, 그것에 상응하는 여섯 개의 대[육경(六境)]인 색경(色境)[빛깔과 모양], 성경(聲境)[소리], 향경(香境)[냄새], 미경(味境)[맛], 촉경(觸境)[촉감], 법경(法境)[생각, 마음의 대상]을 합친 것이다.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어떤 바라문이 물었다. “세존이시여, 이른바 일체란 어떤 것입니까?” “일체란 곧 십이처이니 눈과 빛깔,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신체와 촉감, 의식과 법이다. 이것을 일체라 한다. 비구들아, 만약 어떤 사람이 이것은 일체가 아니다. 나십이처를 떠난 다른 존재를 찾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헛된 일이며 알려고 해도 의혹만 더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십이처설은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현상에 대한 인식의 구조와 한계를 제시한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관점이다. 여기에서 근(根)이라 하면 기관 이외에 그 기능까지를 포함한다. 예를 들면 안근은 눈과 눈의 보는 기능까지를 포함한다. 우리는 눈[안근]으로 빛깔과 모양[색경]을 볼 수 있고, 귀로 소리를 들으며,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느끼며,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마음으로 많은 생각을 한다. 이는 모든 정신 작용[식(識)]이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들 주관계인 감각기관과 객관계인 대상이 서로 만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십이처의 분류법은 인간을 중심으로 한 분류법으로 인간의 인식 능력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가 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의 출발이 바로 인간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나라고 하는 주관적 존재와 내 외부에 나타나는 객관세계를 합쳐 일체(一切)라고 하는 것이며 이것을 육근(六根),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육근이란 눈, 귀, 코, 혀, 몸, 뜻의 주관적 인식기관은 외부의 객관 대상을 인식하는 의지처가 되므로 그 근본이 된다고 하여 근(根)이라 하였고 빛, 소리, 냄새, 맛, 촉감, 생각 등의 객관 대상(六境)들은 우리의 깨끗한 마음을 더럽히고 미혹되게 하기에 진(塵)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십이처의 교설 또한 오온무아에서처럼 근본불교 무아의 교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대승불교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일체인 십이처는 항상 하지도 않고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므로 인과 연이 모이면 존재를 형성하고, 인과 연이 다하면 존재를 파괴하도록 만드는 연기의 법칙에 지배된다. 그래서 스스로의 자성(自性)이 없으며, 차별의 세계를 초월한 무분별(無分別)이 된다. 이것이 바로 공의 의미이다. 무(無) 안・이・비・설・신・의, 무(無) 색・성・향・미・촉・법이라는 말로써 육근과 육경[육진(六塵)]을 부정하고 있다. 십이처인 육근과 육경을 부정함으로써 공(空)의 참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육근과 육경은 현상계(俗諦)를 뜻하고, 이를 부정하는 것은 깨달음의 세계인 진제(眞諦)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