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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천구 시흥동 현령공덕비

금강경 2016. 3. 10. 16:44


                         서울 금천구 시흥동 현령공덕비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는 수령 800여 년으로 보는 은행나무 세 그루가 서있다. 이 곳이 고려 때부터 있었던 금천현

관아의 위치를 말하고 있으며, 1794년 정조임금이 수원 능행을 하면서 경숙을 하던 시흥행궁이 있었다.

 

이곳 관아는 191012월까지 금주현, 금천현, 시흥현, 시흥군청으로 사용되어 왔. 1904년 제2차 시흥농민봉기

때 관아와 행궁이 불에 타는 등 일부 훼손되는 등의 사유로 시흥군청사가 영등포구 문래동으로 이전되었다.

 

이곳은 1794년 이전에는 금천현감(6)이 근무하였고, 1795년부터는 시흥현령(5)으로 행정기관명의

개정과 동시에 승격시켰다. 이 때의 시흥관아와 행궁의 출입로는 대략 현 대우당약국, 우리아카데미학원,

본치과의원 앞을 지나는 길이였. 이 길을 따라 현감, 현령들의 치적을 기리는 비()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선대인들의 진술).

 

시흥군청이 영등포로 이전한 이후 관리 소홀을 틈타 관아건물과 행궁건물이 손실되어 없어지고 현령.현감의

치적비는 개울에 쳐 박혔다.

 

1963년 이지역이 서울시로 편입되고, 1968년 도시계획이 처음으로 수립공포 되었다. 이 것이

 시흥지구토지구획정리사업계획이다. 이 계획에 의하여 카멜리아 앞을 지나 시흥4거리에 이르는 개천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졌고, 복개되었다. 이 때 개울에서 건져 낸 비가 현재 은행나무 옆에 서있는 4기의 비석이다.

 

이 비를 연대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성 명

 직위

재직기간

비 문 내 요

건립시기

 金 炳 怡

 김 병 이

 현령

1876. 1. 30

1878. 3. 23

縣令金侯炳怡淸德愛民善政碑

현령김후병이청덕애민선정비

18788

 李 章 赫

 이 장 혁

 현령

1878. 3. 23

1879. 12. 21

현령이후장혁영세불망비

縣令李侯章赫永世不忘碑

18804

 趙 容 九

 조 용 구

 현령

1884. 2. 20

1884. 10. 29

현령조후용구영세불망비

縣令趙侯容九永世不忘碑

18852

 方 天 鏞

 방 천 용

 현령

1889. 1. 20

1892. 1. 27

縣令方侯天鏞永世不忘碑

현령방후천용영세불망비

1890(재직시)

 


 










            








            



                                                                                                                            글.사진     고운  전  만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