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불교
유식의 수행단계(修行段階)
유식의 수행단계는 이상에서 설명된 유식의 성품(性品)과 양상(樣相)을 몇 가지 단계로 볼 것이며, 어떻게 들어가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먼저 두 가지 종성(種性)이 갖추어 져야 한다.
하나는 본성(本性)에 머무는 종성이다. 언제부터인가 알 수 없는 옛날부터[무시, 無始] 근본식에 의탁해서 본래부터 있는 무루법(無漏法)의 원인이다.
두 번째는 훈습(薰習)으로 이루어진 종성이다. 법계로부터 들어서 얻은 지혜 등이 훈습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두 가지 종성을 갖추어야만 비로소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유식수행의 단계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자량위(資糧位)이다.
자량위 단계는 유식을 이해하고 믿음이 깊으나 아직까지는 ‘능취(能取)와 소취(所取)가 공(空)이다’하는 단계에는 미치지 못한 상태이다. 이 단계는 외부를 향한 문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소지장(所智障)과 번뇌장(煩惱障)을 제어하고 단멸하는 단계가 아니다. 해탈을 위하여 복덕(福德)과 지혜(智慧),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행을 쌓는 단계이다.
지혜는 6바라밀의 지혜를 말하며, 복덕은 보시, 지계, 인욕, 선정, 정진을 가리킨다. 자리는 팔정도, 칠각지, 오근 등을 수행함을 말하고, 이타는 4선법(4攝法)과 4무량심(4無量心)을 실천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가행위(加行位) 이다.
가행위는 자량위에서 닦은 지혜와 복덕을 잘 비축하고 나서 인식대상(所取)과 인식주체(能取)를 점차 제어하고 제거하여 번뇌가 없는 세계로 들어가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명칭, 대상, 자성, 차별 등 모든 인식대상이 허망 된 존재[假有]로서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추구하고 관찰하는 단계이다.
세 번째는 통달위(通達位)이다.
통달위에서는 모든 보살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조견하여 집착심과 분별심을 여의고 있는 그대로 존재의 성품과 현상을 통하여 체득한 경지이다.
네 번째 단계는 수습위(修習位)이다.
수습위 단계는 끊임없는 수도 단계이다. 있는 그대로 통달한 진리를 반복해서 닦아 익힌다. 이 단계에서 아집과 법집을 여읜다.
다섯 번째 단계는 구경위(究竟位)이다.
구경위는 최고의 바른 깨달음, 즉 열반(涅槃)에 들음을 말한다. 장애를 벗어나 원만한 지혜를 갖춘다. 미래가 다하도록 중생을 교화 한다. 열반은 곧 무득(無得)의 세계이고,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으며, 선(善)이고, 상주(常住)하는 것이며, 안락(安樂)이고, 해탈신(解脫身)이므로 법신(法身)의 세계이다.
전의(轉依) - 자기완성(自己完成)
유식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성취하는 원리를 전식득지(轉識得智)라고 한다. 전식득지는 현상세계의 허망한 식(識)을 진여(眞如)의 무분별(無分別)로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전의에서 전은 전사득지(轉捨得智)를 뜻하며, 이는 번뇌장과 소지장의 종자를 버리고 열반과 보리를 전득(轉得)하는 것이다.
의(依)는 의타기자성을 말한다. 염정식인 의타기자성을 청정식인 원성실자성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의타기자성인 아뢰야식 속에는 악의 종자와 선의 종자가 함께 들어 있다. 악의 종자는 변계소집자성이다.
불교수행은 우리들 마음인 아뢰야식 속에 있는 악의 종자를 여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전의(轉依)라고 한다. 여기에서 의(依)는 依他起自性)을 의미한다. 불자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서 전오식을 성소작지로 전환하고, 제6의식을 묘관찰지로 전환하며, 염오식인 말라식을 평등성지로 전환하고, 아뢰야식을 대원경지로 전환하는 것을 실행해야 한다.
① 성소작지(成所作智)는 해야 할 일을 하여서 마치는 지혜이다. 안식(眼識) 내지 신식(身識)의 감각작용인 전5식이 변화한다.
② 묘관찰지(妙觀察智)는 관찰하는 지혜이다. 모든 사물의 자체와 보편적인 특질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제6의식의 이것, 저것 하는 개별적인 인식상태인 분별작용이 변화된다.
③ 평등성지(平等性智)는 평등한 본성을 보는 지혜이다. 말라식에서 근원적인 자아의식 작용이 없어져서 자기와 남이 평등하다고 보는 지혜이다.
④ 대원성지(大圓性智)는 큰 거울과 같은 지혜이다. 아뢰야식 안에 있는 모든 오염[染心]이 제거되어 마음이 근본적으로 티끌하나 없이 깨끗하게 닦인 거울처럼 된 상태이다. 크고 둥근 거울에 모든 사물이 있는 그대로 비추어 지는 것과 같이 대원경지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항상 치우침이 없이 나와 우주가 하나 된 지혜이다. 대원경지는 곧 깨달음에 들어간 상태이다.
수행은 성소작지에서 대원성지에 이르는 단계를 목표로 삼고, 꾸준히 정진하여 한 단계, 한 단계 오르는 과정이다. 수행을 통해 마음의 때가 조금씩, 조금씩 닦여져서 최후에는 티끌하나 없이 닦여진 순선(純善)의 본성(本性), 즉 진여(眞如)가 나타난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성(性)은 완성된 자기이다.
불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하였다. 절대신(絶對神)이 자기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혹독한 정진(精進, 修養)을 통해서 자신을 완성시킬 때, 그 때가 깨달음을 얻은 시점이며, 그리하면 영원히 평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