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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여 약해지면 안 돼

 

                         여자여 약해지면 안 돼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늘 하늘에 순종하면서 경이로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즐거울 때는 하느님께 감사할 줄 알았고, 힘이 부치고 마음이 괴로우면 두 손 모아 간절히 소원을 빌었다. 그래서 하느님이란 말은 우리에게 퍽 친숙한 말이다.

 

하느님! 그 뜻은 天帝, 上帝라하여 하늘나라에 계신 임금님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은 하늘나라에 계시면서 우리 인간의 생존문제를 관리한다. 그렇기에 누구도 그 권위에 도전할 수 없는 절대자이다.

한 나라의 개국과 흥망도 그의 의도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우리 조상들은 믿고 살았다.

알타이(Altai)평원에서 몽골(Mogol)을 거처 만주,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내내 하늘의 뜻을 공경하고, 동에서 붉게 떠오르는 생명과도 같은 태양을 숭배하면서 소박하게 살아왔다.

그들은 한 국가의 열림과 닫힘이 이들 하느님과 태양의 보살핌이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다고 믿었으며, 또 그들의 뜻이 자기에게 닿아 한 나라를 열 수 있도록 기원하였다.

환경에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정보가 의식화 과정을 거친 후 염원을 통하여 정신은 물론 생리적 변화까지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 염원이 건국신화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의 건국신화를 간략하게 짚어보고 그곳에 담긴 숭천사상과 한국의 여인상을 찾아보고자 한다.

 

 

                          우리의 建国神話건국신화

 

단군신화

단군신화는 하늘나라에 계신 임금님이신 환인이 그의 둘째아들 환웅을 인간세계에 내려 보내 우리를 다스리게 한다. 환웅은 곰을 사람으로 변신시켜 그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 그분이 고조선의 시조이며 우리민족의 조상이다. 여기서 환인은 天神이며, 환웅은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이다. 그리고 단군은 인간이다. 또 곰은 주로 물가에 살기 때문에 陰으로 분류된다.

 

동명 신화

자기 스스로를 천제, 즉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해모수가 하백의 딸 유화와 결혼하고 하백과 뜻이 맞지 않아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유화는 후에 주몽을 낳았는데, 주몽이 부여 금와왕의 아들과 신하들로부터 많은 수난을 겪는다. 유화는 유복자 주몽을 보살피면서 자상한 어머니로서, 때로는 트릭스터(trickster)도 주저하지 않으면서, 혹은 穀神곡신으로 활동하면서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 남쪽으로 보내 고구려를 세울 수 있도록 조정자 역할을 한다.

 

단군신화와 동명신화를 비교해 보면 단군의 할아버지인 환인은 주몽의 할아버지인 천제이고, 환웅은 해모수와 같은 격이며, 단군과 주몽은 또한 같은 격이다. 웅녀와 유화도 마찬가지이다. 웅녀는 음을 상징하는데 하백도 수신이므로 음을 상징하며 그의 딸 유화는 물론 음이다.

두 신화의 차이점으로는 동명신화에서는 유화의 아버지가 등장하고, 웅녀는 직접 아들을 생산하나 유화는 알을 낳은 후 알에서 주몽이 탄생한다.

 

백제의 건국신화

백제는 주몽의 아들인 온조가 세웠다(다른 설이 있음). 주몽이 졸본에 와서 졸본부여왕의 딸(혹은 월군의 딸이라는 설도 있음)과 결혼하여 온조와 비류를 낳았다. 한편,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예씨 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들 유류가 졸본부여에 오자 그를 태자로 삼으니 온조의 어머니는 아들의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울 것을 알고 두 아들을 남하시켜 백제를 세우게 한다.

 

온조는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의 손자요, 주몽의 아들이므로 그도 역시 천제의 자손이다.

 

신라의 건국신화

박혁거세는 “계림의 6촌장이 나정 옆 숲에서 알을 발견하고 깨뜨려보니 어린아이가 나왔다.” 이 사람이 신라시조이다.

또, 탈해이사금은 “다파나국(또는 용성국) 왕비가 큰 알을 낳았는데 사람이 알을 낳았으니 불길하다 하여 그 알을 독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다.”고 한다.

이 둘은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

 

가락국의 건국신화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은 “금합을 열어보니 해처럼 둥근 황금빛 알 6개가 있었다. 하루가 지나자 여섯 아이가 태어났다”고 하였다.

 

 

우리 고대국가의 건국신화를 살펴보면 건국자가 천제, 즉 하느님의 자손으로 탄생하는 天孫思想천손사상과 알에서 태어나는 卵生思想난생사상이 있다. 앞의 경우는 단군․동명․온조신화를 들 수 있고, 뒤의 경우는 신라․가락국신화를 들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천손사상이 먼저 나타나고 난생사상이 뒤에 나타나는데 동명신화는 그 중간쯤에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천손사상이 북방민족의 보편적 사고라면 난생사상은 다분히 중국적이다.

 

참고로 중국의 고대국가인 은나라 건국신화를 살펴보자.

“융씨는 간적 등 두 딸이 있었는데 하루는 둘이 강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때 제비(검은 새라고도 함)가 알을 떨어뜨렸는데 간적이 무심코 알을 받아먹었다. 그 후 간적은 임신을 하고 설을 낳았는데 그가 은나라 시조인 탕황의 조상이다.”

 

또, 진나라의 건국신화를 보자.

“진나라 조상인 전욱에게는 여수라는 손녀가 있었다. 하루는 여수가 베를 짜고 있는데 제비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와 알을 떨어뜨렸다. 여수가 깜짝 놀라 그 알을 받아 삼켰는데 즉시 임신을 하였고 아들을 낳았다. 그의 이름이 대업이라 한다.”

 

이렇게 해서 신라와 가락국의 신화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아보았다.

고조선과 고구려, 부여의 영토는 현재의 요녕성, 길림성, 조선족 자치구 일대였다. 이들 나라가 사라지고 한민족의 세력이 반도 안으로 축소된 후에는 그 넓은 만주는 여진족, 글안족 등 소위 만주족이 차지하였다. 이들 족은 고조선, 고구려와 부여 때에는 속국으로 지내는 등 보잘 것 없는 세력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후에 세력을 키워 요나라, 금나라, 청나라를 세우는 등 중원지방을 지배하였다. 이들은 엄연히 우리와 같이 북방에서 내려왔으며, 여러모로 우리와 유사한 족이다.

 

그 만주족의 시조신화에 이런 내용이 있다.

“장백산(백두산) 동쪽 포아호리 연못에서 선녀 세 자매가 목욕을 하는데 神鵲신작(神까치)이 붉은 과일 하나를 막내의 옷에 두었다. 막내가 이것을 입에 물고 있다가 실수로 삼켰다. 곧 임신하여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이 사람이 만주족의 시조이다.”

이 신화 역시 난생신화와 유사하다.

 

천손신화와 난생신화를 비교하여 보자.

천손신화는 神인 하느님은 하늘에 그대로 있고, 그의 아들이 땅으로 내려와 결혼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 아들을 생산하며, 그 아들이 국가를 세운다. 그런데 난생신화는 알 또는 붉은 과일과 같은 물체를 새를 통하여 여자의 몸에서 받아들이게 한 후 임신하고 아들을 생산하고 있다. 천손신화는 자연적 순리에 따르고 있으나 난생신화는 좀 비유적이다.

 

여자가 삼킨 알이나 붉은 과일 등은 남자의 정액이나 생식기에 비유된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주인은 누구인가? 주인은 하느님, 즉 천제이다. 여기서 새는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사자(messenger)이다.

결국 두 종류의 신화는 하느님의 씨를 받아 아들을 생산하고, 이들이 국가를 세우니 모두가 천손사상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의 건국신화

고려의 건국신화는 조선 숙종 때 사람 이중환의 <택리지>에 소개되고 있다.

“당나라 선종(宣宗, 847 - 859)이 천자의 위에 오르기 전에 두루 여행을 하다가 조선의 예성강 입구에 도착하였다. 날이 저물어 보옥의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보옥이 자기 둘째딸 진의를 잠자리에 들여보냈다. 선종은 머물다 떠나면서 ‘만약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작제건이라 하고, 이것을 주시오.’하면서 붉은활을 남겨놓았다.

 

아들을 낳아 작제건이라 이름을 지었는데 아주 용감하고 활을 잘 쏘았다.

작제건이 아버지를 찾아 중국으로 가기 위해 상선에 올랐는데 서해 한 가운데 작은 섬에 남게 되었다(제비뽑기에서 불행하게 당첨됨). 며칠이 지났는데 바다용이 나타나 자기를 괴롭히는 요괴를 죽여 달라고 청한다. 작제건은 붉은활로 단번에 쏘아 죽였다. 용왕은 고마운 마음으로 자기의 딸을 작제건에게 주었다. 용의 딸과 결혼한 작제건은 패서로 돌아와 융을 낳았으며, 융은 왕건을 낳았다.?

 

살펴보자.

고려의 왕건은 당나라 선종의 증손자이다. 중국의 왕은 천자라 하며 그 조상은 천제가 된다. 그러니 왕건도 천제의 후손이 된다. 선종은 환웅, 해모수와 비교되고 왕건은 단군, 주몽, 온조와 같은 반열에 선다.

 

이상 살펴보았듯이 고조선, 고구려, 고려의 건국신화를 비교하면 환인〓천제(해모수의 아버지)〓천제(선종의 조상)이고, 환웅〓해모수〓선종으로 볼 수 있으며, 단군〓주몽〓왕건이 된다.

 

우리의 건국신화는 천손신화와 난생신화를 불문하고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에서 고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하느님의 후예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신화 속의 한국여인상

 

달이 밝은 밤이나 어두운 밤이나 뒤뜰의 장독대에서 정화수 떠놓고 간절히 치성을 드리는 여인이 있다. 달이 밝으면 정화수에 달이 어리고, 어두운 밤이면 칠성별이 함초롬히 담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늘에 계신 상제님께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칠성님께 비나이다. 우리 아들 승승장구 승진하게 하여 주시 옵고, 우리영감 병석에서 일어나게 살펴주시옵소서.”

멍석에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비는 여인의 모습은 경건하면서도 간절한 애원이요 처절한 울부짖음이다.

우리의 여인들은 늘 하느님께 치성을 드리면서 자신을 숨기고 아들과 남편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남자 못지않은 용기와 지혜를 발휘하였다. 중국이나 서양에서는 여자가 한낮 남성의 노리개에 불과했던 현상과는 사뭇 달랐다.

신화 속에서 여인의 활약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熊 女(웅녀)

단군의 어머니 웅녀는 순종적인 면과, 적극적인 면을 동시에 갖추었다. 환웅의 신령스런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받아먹으며 세이레동안 기도하여 여자의 몸을 받았다. 모든 고통을 이기면서 자기의 소원을 이루는 인내심은 한국인의 은근과 끈기를 말해주고, 자식의 잘됨을 위해서라면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모성애가 듬뿍하다.

또 적극적으로 자기 의사를 환웅에게 전달하여 임신하고 단군을 생산하는 과정은 여성의 본능적 종족보존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柳 花 (유화)

유화는 버들 꽃 이라는 뜻이다. 이‘버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화는 수신인 하백의 딸이다. 그녀가 여러 자매들과 함께 강가에서 놀고 있는 데 스스로를 천제의 아들이라고 하는 해모수를 만나 관계를 갖고는 이를 책하는 하백에게 쫓겨난다. 부여왕 금와를 만나 방안에 있는데 일영이 비추더니 임신을 하게 되고, 알을 낳았다. 알에서 깨어난 사내가 주몽인데 주몽은 금와의 아들 일곱 형제와 신하들로부터 갖은 수모를 당하며 성장하였다. 왕자가 여러 신하들과 함께 주몽을 모살 하려하자 유화가 이를 눈치 채고

“나라 사람이 장차 너를 해칠 것이니 네 재능으로 어디 간들 안 되겠느냐. 지체하다 욕을 당하는 것보다 멀리 가서 쓸모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하면서 남쪽으로 가게 한다.

 

만주족은 버들을 天母神천모신으로 믿는다. 그들은 버드나무를 女陰(여자의 생식기)과 같은 의미를 가지며 물과 생명력을 상징한다. 그러한 유화는 버드나무요, 음이요, 여자의 생식기이다. 음인 곰이 여자로 변신하는 것과 버들이 유화로 변신하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버들은 봄이 오기 전에 개울(물)가에서 꽃을 피우니 다산, 풍요의 상징이다. 천안삼거리의 능수버들은 무엇을 은유하고 있는가?

 

인류사 속에서 여성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 이였다. 풍만한 젖무덤에 태양같이 둥글고 크게 임신한 배, 두툼한 엉덩이는 신으로까지 받들어졌다.

 

태조 왕건과 柳氏부인

유화사상은 고구려 건국신화에 이어 고려, 조선왕조의 건국신화에도 나타난다.

고려사 제88권 신혜왕후 유씨 조에 이렇게 적고 있다.

“태조 왕건이 궁예의 부하로서 군사를 거느리고 정주(경기도 덕풍)지역을 지나다가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말을 쉬게 하고 있는데 이 고을 유장자의 딸 柳氏가 길옆 시냇가에 서있었다. 그 날 왕건이 그의 집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유장자는 그 딸로 하여금 왕건의 잠자리를 모시도록 하였다.”

왕건이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쉬다가 길옆 시냇가에 서있는 유씨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첫째왕후로 맞이한다. ‘버드나무와 시냇가의 처녀’가 수신의 딸 유화를 연상한다. 성도 버들유로 유화와 같다.

 

“궁예 말년에 유홍,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이 왕건을 추대하여 왕을 교체하려 하였으나 왕건이 거절하였다. 이때 신혜왕후 유씨가 ‘대의를 내세우고 폭군을 갈아내는 것은 예로부터 있는 일입니다. 지금 여러 장수들의 의견을 들으니 저도 의분을 참을 수 없는데 하물며 대장부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라고 하며 손수 갑옷을 가져다가 남편(왕건)에게 입혀주었으며, 여러 장수들이 그를 옹위하고 나아가 드디어 왕위에 올랐다.”

 

유씨는 왕건이 즉위 후에 신혜왕후가 되며 그 후에는 후사도 없이 기록 속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러니까 신혜왕후 유씨는 버드나무 밑 물가에서 왕건을 만나 그로 하여금 고려를 열게 하고 자신은 영광을 멀리하고 사라진다.

 

태조 이성계와 버들잎

이성계가 황해도 곡산으로 사냥을 나갔다. 온 종일 짐승을 찾아 헤매다 사슴 한 마리를 발견하고 급히 쫓았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처녀가 있어 물 한 모금을 청하였다. 그 처녀는 물바가지에 버들잎 하나를 띄워 건넨다. 이성계가 연유를 물었다. 그 처녀 말이

“쫓는 사슴은 새끼를 가진 듯하였습니다. 급히 서두르다 보면 모르고 화살을 날려 사슴이 맞을 듯싶어 그랬습니다.”한다.

 

이성계는 불연 듯 무학대사의 살생금지 5계가 머리에 떠올렸다. 이성계가 그 날 밤 강윤성 집에서 유숙을 하게 되었는데 윤성은 자기 딸을 천침하여 잠자리를 받들게 하였다.

우물가에서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준 여인이 이성계의 후비 신덕왕후 강씨이다. 여기서도 우물가의 여인, 물과 버들잎이 등장한다.

그러나 신덕왕후 강씨는 유화나 신혜왕후와 달리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욕심을 부리다 불행을 가져왔다.

 

우리 역사 속에서 여인의 힘은 참으로 컸다. 아비 없이 자식을 키워 고구려를 세우게 한 유화부인, 전처의 소생이 고구려를 찾아와 태자로 책봉되어 자기 아들의 입지가 위태로워지자 남하시켜 백제를 세우게 한 온조의 어머니, 망설이는 남편에게 갑옷을 입혀주며 용기를 심어주어 고려국을 세우게 한 신혜왕후 유씨, 급히 서두르는 이성계에게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주어 침착함을 일깨워준 신덕왕후 강씨에 이르기까지 개국을 한 사나이 뒤에는 반드시 그보다 더욱 강한 여인이 있었다.

 

때로는 어머니로, 때로는 아내로. 때로는 한 여인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한국인의 혼으로 이어온 우리의 자랑이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정신은

“씨앗은 하늘이 결정하여 내리고, 그 씨앗을 품어 생명을 틔우고 자라게 하여 큰 재목이 되게 함은 대지의 목이다.”

는 천리의 가르침이라 하겠다.

 

                                                                                     고 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