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불교(2)
3) 경전의 결집
제1차 결집
o 가장 최초의 결집은 붓다의 열반 직후에 이루어졌다.
- 제1차 결집은 라자그리하에서 500명의 제자들이 모여서 경장과 율장을 편찬하였다. 그래서 ‘500결집’이라고도 한다.
o 1차 결집은 라자그리하의 교외에 있던 칠엽굴(七葉窟)에서 이루어졌는데, 마하카쉬야파(maha-ka-syapa, 마하가섭)의 주도 아래 아난다(ananda)가 경장을 암송하였고, 우팔리(Upali)가 율장을 암송하였다. 이 때 편찬된 내용은 후대 불교사의 지침이 되는 근본 경전으로서 가장 중요시되었다.
제2차 결집
o 기원전 383년경 제2차 결집
- 바이샬리(Vaisali)결집, 또는 700결집이라고도 불린다. -제1부 초기불교 참조-
제3차 결집
o 아쇼카(BC268~BC232) 왕은 기원전 260년경 불교도로 전향
- 아쇼카 왕은 불교에 귀의한 뒤, 불살생의 원리를 실천하고 공평무사한 정책을 통해서 만인의 인심을 얻는데 힘썼다. 아쇼카 왕은 수많은 불교승원과 기념탑을 세웠다.
o 아쇼카 왕이 즉위 17년째 되던 해, 마가다국의 수도인 파탈리푸트라에서 1,000명의 비구를 소집하여 목갈리풋타팃사 주도로 결집을 행하였다. 이를 1,000결집, 화씨성 결집 등으로 부른다. o 제3차 결집에서는 인도 자체와 스리랑카 등의 외국에 정통 교의를 전하는 성전을 편찬했으며, 논서들을 논장(論藏)으로 집성함으로써 비로소 3장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 3차결집 이유 ; 이교도들이 불교승단에 들어와 문란하게 함.
주관 ; Asoca왕. 아쇼카왕은 승단의 분열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결과 ; 6만 명의 이교도를 추방.
제4차 결집
o 북 인도를 지배하던 카니슈카 왕(서기 73~103년) 시대에 『아비달마대비바사론』을 편집했던 일을 가리켜 제4차 결집이라 말한다. 현장(玄斡) 스님이 번역한 『아비달마대비바사론』의 「발(跋)」에 의하면, 제4차 결집은 불멸 400년경에 카슈미르(KasmI-ra)의 환림사(環林寺)에서 이루어졌다. o 그 때 집대성된 것이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毗達磨大毘婆沙論)』이다.
☞ 언제 ; BC94년 ~ BC80년 사이
어디서 ; 스리랑카 알루위하라 승원, 500명의 장로.
결과 ; 경장, 율장, 논장 집대성.
3. 부파불교
1) 교단의 분열 (1) 근본 분열(根本分列)
o 교단의 분열에 대한 전승 내용은 남전(南傳)과 북전(北傳)에 차이가 있다. 남전의 문헌으로는 『디파방사(DI-pavam)』와 『마하방사(Maha-vam)』가 있으며, 북전의 기록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문헌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이다.
o 인도의 학승 바수미트라(Vasumitra, 서기 1~2세기경)가 저술한 『이부종륜론』의 서두에서는 붓다가 입멸한 지 100여 년이 흐르자 여러 부파들이 일어나 이롭지 못한 주장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키게 되자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 논서를 저술한다고 밝히고 있다.
o 그에 따르면 붓다가 열반한 후 100여 년이 지난 뒤 아쇼카 왕이 재위에 있을 당시에 처음으로 교단 분열이 일어나게 되었다.
(2) 지말(支末) 분열 - 제1부 부파불교 참조-
(3) 경량부(經量部)
o 경량부는 BC 2세기경 설일체유부의 입장을 반대하여 등장하였다. 경량부는 교의 연구보다는 부처님의 교설을 중시하는 등 설일체유부의 유적존재관을 부정했다. 이들은 사물이나 현상 등이 비록 찰라적으로 존재할 지라도 모든 사람의 내면에 갖춰져 있는 선의 종자를 포함하고 있는 마음의 윤회하는 기체는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이들은 부파불교를 넘어서 대승불교로 발전하는 과도기적 부파로 분류된다.
4. 대승불교
1) 대승불교의 원류 - 제1부 대승불교 참조
2) 대승의 사상과 실천 - 제1부 대승불교 참조
3) 대승경전 <대승경전의 시기 구분>
- 초기 : 1세기경까지, 용수(龍樹) 이전.
- 중기 : 용수 이후 세친(世親)까지, 2~5세기경까지.
- 후기 : 세친 이후, 6세기부터 밀교, 즉 금강승의 성립기인 7세기경까지.
4) 대승교단의 성쇠
o 대승불교가 널리 퍼지게 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주인공들은 바로 설법사(說法師)들이었다.
- 대승의 시대에 법사들은 스스로 보살도를 수행하면서 대중을 향해 법을 설하고, 대중들은 그 법문을 베껴 쓰고 외우며 널리 펴는 것이 공덕을 쌓는 길이었다. 법사들은 일반적으로 보살이라 불렸으며, 그들은 정법의 수호자이자 교법의 정통적인 전수자로서 그 역할을 다하였다. o 1세기경부터 불교 전법사들은 힌두쿠쉬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포교하기 시작했다.
- 그러나 인도 불교교단은 굽타 왕조의 성립 이후부터 차츰 쇠퇴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하였다. o 굽타 왕조는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확립하고 사회질서의 토대가 되는 브라만교를 국교로 정하였다.
- 브라만교, 즉 힌두교는 급속히 세력을 펼쳐 갔으며, 동시에 불교의 사회적 기반은 약화되었다.
- 불교교단에서는 중관, 유식학파와 불교논리학파 등의 학문적 성과는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민중들 사이에서는 힌두교가 중심 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5. 밀교(密敎) - 금강승, 흰두교와 습합된 불교
1) 성립 배경 o 마우리야 왕조 때 아쇼카 왕의 두터운 보호를 받고 성장하기 시작했던 불교교단은 인도 내외로 확장되었다.
- 다른 한편으로는 점차 인도의 토착종교인 힌두교 등과 혼합되어 새로운 경향을 띠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바로 밀교이다.
o 마우리야 왕조에 버금가는 통일국가를 이루었던 굽타 왕조 때부터 힌두교는 지배층의 종교로서 확고하게 자리 매김하였다.
- 사회 전반의 기본 질서로서 그 골격을 형성하였다.
o 불교는 기존의 대승불교와는 차별화된 교의 내용으로 보다 더 힌두교에 근접한 탄트라불교의 양상을 띠고 있었다.
- 이와 같이 힌두교와 습합된 탄트라 불교를 대승과 구별하여 금강승이라 하였다.
o 밀교의 교의는 힌두교의 의례와 교의 내용을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채용함으로써 불교 고유의 특징을 상실함과 동시에 힌두교에 동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o 밀교의 배경으로서 거론되는 주요 원인은 다음과 같다.
- 첫째, 교주인 고타마 붓다의 역사적 실체가 퇴색되었다는 점이다. 부파시대와 대승불교를 거치면서 성립된 다불(多佛)사상, 삼신불설 등은 고타마 붓다를 역사적인 인물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 결과 수많은 불보살들의 등장함으로써 인도 전래의 신들에게 접근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급기야 힌두교의 만신전(萬神殿) 속으로 고타마 붓다가 편입되기에 이르렀다.
- 둘째, 출가의식을 거친 자들도 다시 재가자와 같은 위치로 돌아갈 만큼 교단의 기강이 해이해졌으며, 이는 교단의 지적 활동을 쇠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셋째, 밀교교단에서 출가비구는 주술사 내지 마법사로서의 역할까지 수행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힌두교의 쉬바교 또는 비슈누교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o 이와 같이 밀교가 발전하는데 중심 역할을 하였던 곳은 마가다지역의 사원들 이었는데 8세기경에 건립되어 융성하다가 13세기 초엽에 무슬림에 의해 파괴되어 해체되고 말았다.
o 힌두교와 습합된 불교는 현재 네팔에 남아 있다. 네팔에서는 불교가 힌두교의 한 종파에 불과하다고 할 만큼 양자의 구별은 쉽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불교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2) 교의와 수행법 - 제1부 밀교 참조 -
6. 인도불교의 쇠멸
o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인도불교의 쇠퇴 원인은
불교교단 자체의 쇠진,
왕족을 비롯한 정치적 지배계층의 후원 감소,
힌두교도의 박해.
이슬람교도의 침입 – 첫째 요인이다.
교단 내부의 타락과 부패,
분파의 분열로 인한 교단의 쇄미,
재가 신도를 충분히 양성하지 못한 점 등이다.
o 인도 땅에서 불교가 쇠퇴한 이유는 불교 내부에서 찾는 것이 보다 큰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먼저, 초기 불교가 힌두교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제사의식을 철저히 거부했다는 점이다.
- 붓다는 전법(傳法)의 초기부터 열반을 성취하는 데는 어떠한 의식이나 제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그러한 가르침은 부파시대까지만 해도 교단 내부에서 행해지는 최소한의 의식 외에 특별한 제의를 행하지 않음으로써 잘 지켜져 왔다고 볼 수 있다.
- 대승을 거쳐서 밀교에 이르러서 불교에서도 의식은 매우 중시되었고, 힌두교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양상을 띠었다. 또한 초기불교에서 부정되었던 유신론적 신앙은 점차로 퇴색되고 각종의 신격들이 불교신앙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더구나 대승의 보살신앙과 다불(多佛)사상은 자력신앙을 중시하던 불교를 타력신앙으로 바꾸어 놓는 결과를 낳았다.
7. 현대 인도불교
1) 신불교(新佛敎) 운동
인도에서 다시 불교가 부흥한 것은 20세기 중반에 들어서 신불교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신불교운동을 주창했던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Dr. Bhimrao Ramji Ambedkar, 1891~1956년)는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에 해당하는 마하르(Mahar) 카스트 출신이었다. 마하르 카스트란 거리 청소나 소각 등을 담당하던 소위 ‘불가촉 천민’에 속하는 집단이다.
o 암베드카르가 1956년 10월 14일에 불교에 귀의하는 개종식을 주도했던 첫째 바로 불교의 인간평등사상에 있었다. 그 당시 집단동기도 개종식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80만 명에 이르렀는데, 그 대부분은 하층계급에 속했다. 그 중 50만 명 정도가 불교로 개종했다.
o 개종한 하층민들의 불교를 지칭하는 말로서 신불교(Neo-Buddhism)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겼지만, 이는 고타마 붓다의 사상과 다르다는 뜻은 아니었다.
o “나렌드라 자 다브” - 신도 버린 사람들, 불가촉 천민 출신 인도장관.
2) 현대 인도불교의 부흥 o 2001년 11월 4일에는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서 ‘전 인도 불가촉천민 연합회’의 의장인 람 라즈(Ram Raj)가 주도하는 집단 개종집회가 열렸다. 이 때 운집했던 100만 명에 달하는 하층민들이 불교로 개종하고자 했으나 그 중 8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경찰의 제지를 받고 집회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o 상카시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석가족의 후손들이 매년 음력 9월 보름에 개최하는 상카시아불교대축제의 경우는 2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행사로서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을 널리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o 인도에 불교사원을 세우기 위한 각종 모금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o 인도불교의 부흥은 티베트인들의 유입과도 무관하지 않다.
다음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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