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mindfulness) 修行
Pali 경전
수행하는 곳으로 가는 마음자세
맛지마니카야 : 4 바야베라와 경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때 브라흐민 자눗소니가 부처님께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고따마 존자님, 인적이 없는 외딴 곳이나 숲속 정글에 머무는 것은 어렵습니다. 인적이 없는 외딴 곳에서 산다는 것은 어렵고, 홀로 있음을 즐기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의 마음이 숲의 두려움으로 사로잡힐 것 같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브라흐민이여, 그대의 말과 같습니다. 내가 깨달음을 얻기 전 나 또한 이와 같이 ‘멀리 떨어져 외딴 곳이나 숲 속 밀림에 머무는 것이 어려웠다. 외딴 곳에서 산다는 것은 어렵고 홀로 있음을 즐기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의 마음이 숲의 두려움으로 사로잡힐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문이 행동을 깨끗이 함이 없이
사문이 말을 깨끗이 함이 없이
사문이 생각을 깨끗이 함이 없이
멀리 덜어진 외딴 숲이나 밀림의 수행 처로 간다면 그 깨끗하지 못한 행동과 말과 생각 때문에 두려움과 공포가 옵니다. 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깨끗이 하지 않고는 멀리 떨어져 있는 외딴 숲이나 미림의 수행처로 가지 않습니다. 나는 말과 생각과 행동을 깨끗하게 합니다. 나는 말과 생각과 행동을 깨끗이 하고 밀림의 숲 수행처로 가는 훌륭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나는 나 자신 속에서 생각과 말과 행동이 온전히 깨끗함을 보았기 때문에 숲에 머무는 것에 커다란 확신을 얻었습니다.
어떤 수행자들은 탐욕과 강한 감각적 쾌락에 집착된 채 멀리 떨어진 밀림의 숲으로 갑니다. 그러나 이들은 탐욕과 감각적 쾌락의 집착으로 두려움과 공포가 옵니다. 또 어떤 수행자들은 악의, 나태와 무기력, 침착하지 못함, 의심, 갈등,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비방함, 두려움,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대한 열망, 게으름과 정진의 부족, 마음집중과 선명한 알아차림의 부족, 안주하지 못하고 들떠있는 마음, 지혜의 부족과 우둔함 등의 성향을 가진 채로 멀리 떨어진 밀림의 숲으로 갑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바람직하지 않은 나쁜 성향 때문에 두려움과 공포기 옵니다. 나는 이러한 바람직하지 않은 나쁜 성향을 극복하여 깨끗이 함이 없이는 멀리 떨어져 있는 숲의 수행처로 가지 않습니다.
나는 이러한 나쁜 성향을 깨끗이 합니다.
나는 이런 나쁜 성향들을 극복하여 깨끗이 하고 밀림의 숲의 수행처로 가는 훌륭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나는 나 자신 속에서 이런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이 극복되어 온전히 깨끗해짐을 보았기 때문에 나는 숲에 머무는 것에 커다란 확신을 얻었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힘이 내 안에서 솟았습니다. 선명한 마음챙김이 확고히 세워졌습니다. 내 몸은 평온하고 흔들림이 없고 마음은 통일되어 하나로 집중되었습니다.
감각적 쾌락과 바람직하지 못한 모든 것에서 벗어나 사유와 숙고가 있으며 홀로 명상함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있는
첫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사유와 숙고를 멈추고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됨이 있으면 사유와 숙고가 없이 삼매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있는
두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환희가 사라진 후 평온한 마음과 분명한 알아차림과 육신의 행복을 느끼며 머뭅니다. 거룩한 사람들이 말하는 ‘평정과 마음챙김에 머무는 사람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세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고통도 쾌락도 버리고 전에 있던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에 의하여 도달한 마음챙김의 순수함이 있는 네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을 때 나의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서 벗어났고, 존재의 번뇌에서 벗어났고, 어리석음의 번뇌에서 벗어났습니다.
브라흐민이여, 내가 숲속 수행처로 가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나 자신을 위한 행복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자비심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브라흐민 자눗소수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재가신자가 되었습니다.
「호흡에 의한 마음행김」 수행을 하면
쌍윳따 니까야 : 54 아나빠나쌍윳따 20
비구들이여, 호흡에 의한 마음챙김 수행법의 삼매를 발전시키고 연마하면 속박을 버리는데 도움이 되며,
좋지 않은 경향을 뿌리 채 뽑는 데 도움이 되며,
가르침을 철저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번뇌를 부수는 데 도움이 된다.
중요한 冥想主題
쌍윳따 니까야 : 46 봇장가 싸윳따 57-73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1, 해골에 대한 명상,
2, 시체에 대한 명상,
3, 慈愛, 慈悲, 기쁨, 평정에 대한 명상[4무량심에 대한 명상]
4, 호흡에 대한 명상,
5, 더러움에 대한 명상,
6, 죽음에 대한 명상,
7. 無常, 苦, 無我에 대한 명상,
8, 버림에 대한 명상,
9, 離貪에 대한 명상,
10, 소멸에 대한 명상을 발전시키면 많은 열매와 이익을 얻을 것이다.
이와 같은 명상을 발전시키고 성숙시키면 많은 지금 현재의 생애에서 완전한 지혜를 얻거나 아직 집착이 남아있다면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자 않을 지위[아나함]에 도달한다. 이런 명상을 발전시키고 연마하면 커다란 이익을 얻으며, 속박에서 벗어나 평화를 얻으며, 안락한 삶으로 이끈다.
「호흡에 의한 마음챙김」 수행법
쌍윳따 니까야 : 54 아나빠나 쌍윳따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기원정사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그대들이 수행을 발전시키고 연마할 때 좋은 결실과 이익을 가져오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호흡에 의한 마음챙김이다.
그러면 좋은 결실과 이익을 얻기 위하여 어떻게 호흡에 의한 마음챙김을 발전시키고 연마하는가?
숲이나 나무 아래, 또는 빈 오두막으로 가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몸을 바로 세우고, 마음챙김을 앞에 세운 후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1. 숨을 길게 들이쉴 때는 ‘숨을 길게 들이 쉰다’고 알아차리고, 숨을 길게 내쉴 때는 ‘숨을 길게 내 쉰다’고 알아차린다.
숨을 짧게 들이쉴 때는 ‘숨을 짧게 들이 쉰다’고 알아차리고, 숨을 짧게 내쉴 때는 ‘숨을 짧게 내 쉰다’고 알아차린다.
2. ‘온 몸을 통하여 호흡이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숨을 들이 쉰다’고 수련하고, ‘온 몸을 통하여 호흡이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숨을 내 쉰다’고 수련한다.
3. ‘몸의 형성(호흡)을 고요히 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 쉰다’고 수련하고 ‘몸의 형성 (호흡)을 고요히 하면서 나는 숨을 내 쉰다’고 수련한다.
4. ‘환희심을 느끼면서 나는 숨을 들이 쉰다’고 수련하고, ‘환희심을 느끼면서 나는 숨을 내 쉰다’고 수련한다.
5. ‘행복을 느끼면서 나는 숨을 들이 쉰다’고 수련하고, ‘행복을 느끼면서 나는 숨을 내 쉰다’고 수련한다.
6. ‘마음의 형성(느낌이나 지각)을 느끼면서 나는 숨을 들이 쉰다’고 수련하고, ‘마음의 형성(느낌이나 지각)을 느끼면서 나는 숨을 내 쉰다’고 수련한다.
7. ‘마음의 형성을 고요히 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 쉰다’고 수련하고, ‘마음의 형 성을 고요히 하면서 나는 숨을 내 쉰다’고 수련한다.
8. ‘마음을 알아차리면서 나는 숨을 들이 쉰다’고 수련하고, ‘마음을 알아차리면서 나는 숨을 내 쉰다’고 수련한다.
9.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면서 나는 숨을 들이 쉰다’고 수련하고,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면서 나는 숨을 내 쉰다’고 수련한다.
10. ‘마음을 집중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 쉰다’고 수련하고, ‘마음을 집중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 쉰다’고 수련한다.
11. ‘마음을 해탈하게 하리라 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 쉰다’고 수련하고, ‘마음을 해탈하게 하리라 하면서 나는 숨을 내 쉰다’고 수련한다.
12. ‘무상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 쉰다’고 수련하고, ‘무상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내 쉰다’고 수련한다.
13. ‘사라짐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 쉰다’고 수련하고, ‘사라짐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내 쉰다’고 수련한다.
14. ‘소멸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 쉰다’고 수련하고, ‘소멸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내 쉰다’고 수련한다.
15. ‘포기를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 쉰다’고 수련하고, ‘포기를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내 쉰다’고 수련한다.
이와 같이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을 발전시키고 연마하면 커다란 결실과 이익을 얻는다.
「호흡에 의한 마음챙김」의 三昧
쌍윳따 니까야 : 54 아나빠나 쌍윳따 7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띠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때 마하깜삐나 존자는 부처님이 계신 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다리를 가부좌하고 몸을 바로 세우고 마음챙김을 앞에 세우고 앉아 있었다. 부처님은 그를 보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마하깜삐나가 몸을 흔드는 것을 보았느냐?”
“부처님, 제가 대중 가운데 앉아 있을 때나 홀로 앉아 있을 때에도 우리들은 그가 몸을 흔들거나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저 비구는 삼매를 발전시키고 연마해서 어려움 없이 자기의 의지대로 몸과 마음을 흔들지 않으며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 무슨 삼매를 닦고 연마하면 몸과 마음을 흔들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가? ‘들이쉬고 내쉬는 숨의 마음챙김을 통한 집중을 발전시키고 연마하면 몸과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들이쉬고 내 쉬는 숨의 마음챙김을 통한 집중을 발전시키고 연마하여 몸과 마음을 흔들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가? 숲이나 나무 아래나 빈 오두막으로 가서 가부좌를 하고 마음챙김을 앞에 세우고 주의를 집중하여 숨을 들이 쉴 때에는 숨을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숨을 내쉴 때는 숨을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호흡에 의한 마음챙김」의 삼매수행
쌍윳따 니까야 : 54 아나빠나 쌍윳따 8
사왓티에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가르치셨다.
“들이 쉬고 내 쉬는 숨의 마음챙김을 통한 집중을 발전시키고 연마할 때는 큰 결실과 이익을 얻는다.
내가 깨달음을 얻기 전 아직 보리삿따였을 때 나는 보통 이 방법으로 수행하였다. 내가 이런 방법으로 수행하며 머무는 동안 내 몸도 마음도 지치지 않았고 눈도 피로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착을 놓음으로써 번뇌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므로 그대들이 만일 몸도 마음도 지치지 않고 눈도 피로하지 않고 집착에서 떠나 번뇌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들이쉬고 내쉬는 숨의 마음챙김을 통한 집중에 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일 가정생활과 연관된 기억과 생각을 버리고 싶다면, 만일 싫어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싶다면, 만일 싫어하는 것에 대하여 싫어하지 않는 마음을 내고 싶다면, 만일 싫어하든지 싫어하지 않든지 하는 두 가지를 다 피하는 마음을 내고 싶다면, 그리고 평정에 머무르고 주의 깊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마음을 내고 싶다면, 들이쉬고 내쉬는 숨의 마음챙김을 통한 집중에 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일 감각적 쾌락과 바람직하지 못한 모든 것에서 벗어나 사유와 숙고가 있으며 홀로 명상함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있는 첫 번째 선정에 머물고 싶다면 들이쉬고 내쉬는 숨의 마음챙김을 통한 집중에 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일 사유와 숙고를 멈추고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됨이 있으며 사유와 숙고가 없이 삼매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있는 두 번째 선정에 머물고 싶다면 들이쉬고 내쉬는 숨의 마음챙김을 통한 집중에 주의 깊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일 환희가 사라진 후 평정한 마음과 분명한 알아차림과 육신의 행복을 느끼며 머물고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평정한 마음챙김에 머무는 사람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세 번째 선정에 머물고 싶다면 들이쉬고 내쉬는 숨의 마음챙김을 통한 집중에 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일 고통도 쾌락도 버리고 전에 있던 행복도 불행도 버리고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에 의하여 도달한 온전히 순수한 마음챙김이 있는 네 번째 선정에 머물고 싶다면 들이쉬고 내쉬는 숨의 마음챙김에 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의 마음챙김을 통한 집중수행이 이와 같이 발전되고 연마되었을 때 만일 기분 좋은 느낌을 느끼더라도 ‘그것은 무상한 것이고 집착할 것이 아니고 기뻐할 일이 아니다’라고 알아차린다.
만일 괴로운 느낌을 느끼더라도 ‘이것은 무상한 것이고 집착할 것이 아니고 괴로워할 일이 아니다’라고 알아차린다. 만일 기분 좋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더라도 ‘이것은 무상한 것이고 집착할 것이 아니다’라고 알아차린다.”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
쌍윳따 니까야 : 47 사띠빳따나 쌍윳따 1-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웨살리 암바빨리 숲에 게셨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여기에 유일한 길이 있다. 그 유일한 길은 사람들을 청정한 길로 인도하고 슬픔과 한탄을 이겨내게 하고 괴로움과 불쾌감을 없애며 바른 길을 얻게 하며 열반에 이르게 한다. 이것은 곳 네 가지 마음행김의 확립이다. 무엇이 넷인가?
수행자는 세상에 대한 탐욕과 걱정을 멀리하고 열정적으로 선명한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가지고
몸에 대하여 몸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느낌에 대하여 느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마음에 대하여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담마에 대하여 담마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머문다.
이것이 유일한 길로서 그 유일한 길은 사람들을 청정한 삶의 길로 인도하고 슬픔과 한탄을 이겨내게 하고 괴로움과 불쾌감을 없애며 바른길을 얻게 하며 열반에 이르게 한다. 이것이 곧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선명한 마음챙김의 알아차림인가?
앞으로 갈 때도, 돌아설 때도, 앞을 볼 때도, 옆을 볼 때도, 팔다리를 굽힐 때도, 펼 때도, 가사를 입거나 들고 갈 때도, 발우를 메고 갈 때도, 음식을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도, 대변과 소변을 볼 때도, 걷고 서고 앉고 잠들 때도, 잠깰 때도, 말할 때도, 그리고 침묵할 때도, 선명한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에 머물러야 한다.
건전한 가르침의 시작점은 戒行과 바른 見解
쌍윳따 나까야 : 47 사띠빳따나 쌍윳따 3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띠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 때 어느 비구가 부처님께 와서 가르침을 청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건전한 가르침의 바로 그 시작점을 깨끗하게 하라.
건전한 시작점의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청정한 계행과 바른 견해이다.
계행을 근본으로 하고 계행을 바탕으로 하여 그대 들의 계행이 진정으로 청전하고 견해가 바를 때 세 가지 면에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발전시켜야 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세상에 대한 탐욕과 걱정을 멀리하고 열성적으로 선명한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가지고
몸에 대하여 몸을
느낌에 대하여 느낌을
마음에 대하여 마음을
담마에 대하여 담마를
내적으로 외적으로 내외적으로 세 가지 면에서 관찰하며 머문다. 이와 같이 계행을 근본으로 하고 계행을 바탕으로 하여 세 가지 면에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발전시키면 밤낮으로 건전한 법은 늘어나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바른 법이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
쌍윳따 니까야 : 47 사따빳따나 쌍윳따 2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아난다 존자와 밧다 존자가 빠딸리뿌따의 꾹꾸따 승원에 있었다. 밧다 존자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벗 아난다여, 여래가 마지막 열반에 드신 후 바른 법이 오래가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며 또 바른 법이 오래 간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좋습니다. 벗 밧다여, 그대의 지혜는 훌륭합니다. 참 좋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여래가 마지막 열반에 드신 후 참된 법이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은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발전시키고 연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래가 마지막 열반에 드신 후 참된 법이 오래가는 것은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발전시키고 연마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챙김의 확립」 이란?
쌍윳따 니까야 : 47 사띠빳타나 쌍윳따 40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무엇이 ‘마음챙김의 확립’인가?
세상에 대한 탐욕과 걱정을 멀리하고 열정적으로 선명한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가지고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느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느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느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마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담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담마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담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이것을 마음챙김의 확립이라고 부른다.
육신의 고통이 마음을 사로잡지 않는 이유
쌍윳따 니까야 : 52 아누룻따 10
어느 때 아누룻따 존자는 사왓띠의 안다 숲에 있었다. 그때 그는 병이 들어 괴로워하였는데 중병이었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그를 방문하였는데 아누룻따 존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누룻따 존자님, 육체적 고통이 마음을 사로잡지 않게 하기 위하여 존자님은 어떻게 머무십니까?”
“벗이여, 나의 마음을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잘 세워서 머물기 때문에 육체적 고통의 느낌이 마음을 사로잡지 않습니다.”
마음챙김의 확립에 대한 가르침 - 大念處經
맛지마 니까야 : 10 시따빳타나 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캄마 사담마라고 하는 쿠루족의 마을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비구들이여’ 하고 말씀하 셨다. 비구들은 ‘세존이시여’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세존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것은 모든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기 위한, 괴로움과 싫어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한, 올바른 길에 이르기 위한, 열반을 깨닫기 위한 하나의 길[ekāyano maggo]이다. 바로 그것은 ‘네 가지의 마음챙김’이다. 네 가지란 무엇인가 ?
(1) 몸에 대한 마음챙김 [身念處]
비구들이여, 여기 [이 가르침]에서 어떤 비구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2)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 [受念處]
그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3) 마음에 대한 마음챙김 [心念處]
그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4) 법에 대한 마음챙김 [法念處]
그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1 몸에 대한 마음챙김 [身念處]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1.1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비구가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빈방에 가서, 다리는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 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단단히 하여 앉는다. 그리고는 마음을 챙겨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을 챙겨서 숨을 내쉰다. 숨을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숨을 들이 쉰다'고 알아차리고(pajānāti), 길게 내쉬면서는 `숨을 길게 내 쉰다'고 알아차린다. 숨을 짧게 들이쉬면서는 `숨을 짧게 들이 쉰다'고 알아차리고, 숨을 짧게 내쉬면서는 `숨을 짧게 내 쉰다'고 알아차린다. `온 몸을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sikkhati) `온 몸을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호흡이라는) 육체의 작용[身行]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들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육체의 작용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한다.
마치 도자기공이나 그의 도제가 원반을 돌릴 때, 오랫동안 돌리면서는 ‘오랫동안 돌린다’라고 알아차리며, 짧게 돌리면서는 ‘짧게 돌린다’라고 알아차리는 것과 같이, 바로 이처럼 비구들이여, 숨을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숨을 들이 쉰다’고 알아차리고, 길게 내쉬면서는 ‘숨을 길게 내 쉰다’고 알아차린다. 숨을 짧게 들이쉬면서는 숨을 짧게 들이 쉰다'고 알아차리고, 숨을 짧게 내쉬면서는 `숨을 짧게 내 쉰다'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온 몸을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온 몸을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호흡이라는) 육체의 작용[身行]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들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육체의 작용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한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대념처경』주석서의 보충설명 ; ‘몸이 있다’라는 것은 오직 육체적인 현상만이 있지, 거기 에 중생, 인격체, 여자, 남자, 자아는 없다는 의미이다. 즉, 몸에는 자아에 속한 것이나, 자아 나, 인격체에 속한 것은 없다는 의미이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은 가장 중요한 수행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이 방법은 위 빠사나 수행을 닦기 위한 예비 단계나, 네 가지 마음집중[四禪]을 계발하는 방법이나 위 빠사나와 선정 의 양쪽을 닦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 지금 이 『대념처경』에서의 출입식념은 다음과 같이 전개될 위빠사나 수행을 닦기 위한 예비단계로서의 마음집중과 고요함을 얻기 위해서 제시되었다.
정기적인 출입식념의 수행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마음의 고요와 마음집중(사선 가운데 한 가지의 선정)을 얻은 후, 수행자는 호흡의 시작(origin of breath)을 검토한다. 그는 사대 (四大; 地水火風)와 다섯 감각기관과 같이 사대에서 파생된 여러 가지 물질적인 현상에 의해 구성되어 있는 육체[色]에 의해서 호흡이라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받아들여진 인상[觸]으로부터 인식[識]이 생겨나고, 이 인식과 함께 오온(五蘊)의 나머지 세 가지 요소인 느낌[受], 표상작용[想], 의지작용[行]이 생겨난 다는 사실도 통찰하게 된다.
따라서 수행자는 이른바 인격체라고 불리는 에고라는 실체 또는 자아는 어디에도 없으며, 존재하는 것은 다만 여러 가지 요건에 의해서 조건 지워져 있는 육체와 마음의 흐름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본다. 그런 후, 그는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서 세 가지 특성을 적용시켜서, 그것들을 전적으로 무상하며, 괴로움이며, 영원한 실체가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中部』118經 『出入息念經』과 『淸淨道論』8장을 참고하기 바람.
1.2 동작[行住坐臥]에 대한 마음챙김
또한 비구들이여, 걸어갈 때는 ‘걸어간다.’라고 알아차리고, 서 있을 때에는 ‘서 있다.’라고 알아차리며, 앉아 있을 때에는 ‘앉아 있다.’라고 알아차리며, 누워 있을 때에는 ‘누워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이외의 다른 몸의 동작이 있을 때, 그러한 동작을 그때그때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1.3 분명한 앎[正知]
또한 비구들이여, 앞으로 나아갈 때나 뒤로 들아 갈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앞을 볼 때나, 주위를 볼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팔다리를) 구부리거나 펼 때에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가사(승복)를 입고, 발우를 들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가고, 서고, 앉을 때에도, 잠자리에 들고, 잠에서 깨어날 때에도, 말하거나, 침묵을 하고 있을 때에도 분명한 앎을 지닌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1.4 육체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킴[厭逆作意]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육신을 아래로는 발바닥에서 위로는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피부로 덮여져 있으며 가지가지의 깨끗하지 못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즉, 이 육신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카락, 몸의 털, 손톱, 발톱, 이,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심장, 간장, 늑막, 지라, 허파, 내장, 내장의 내용물, 위장, 위장의 내용물, 대변, 담즙, 가래, 고름, 혈액, 땀, 고형지방질, 눈물, 액체지방질, 침, 콧물, 관절액, 소변 등.
비구들이여, 마치 위아래 양쪽에 구멍이 나있는 자루에 여러 가지 곡식 즉, 벼, 보리, 녹두, 콩, 깨, 쌀 등이 들어있는 경우, 이 자루를 눈이 있는 사람이 풀어보고서 이것은 벼, 이것은 보리, 이것은 녹두, 이것은 콩, 이것은 깨, 이것은 쌀이라고 직접 관찰하는 것과 같이, 비구들이여, 수행자는 바로 자신의 육신을 직접 관찰한다. 즉, 이 육신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머리카락, 몸의 털, 손톱, 발톱, 이,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심장, 간장, 늑막, 지라, 허파, 내장, 내장의 내용물, 위장, 위장의 내용물, 대변, 담즙, 가래, 고름, 혈액, 땀, 고형지방질, 눈물, 액체지방질, 침, 콧물, 관절액, 소변 등으로.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어떤)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1.5 네 가지 요소[四大; 地水火風]에 대한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이 육신을 현재 있는 그대로, 구성되어진 그대로 (네 가지) 요소의 측면에서 관찰한다. 즉 ‘이 육신에는,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가 있다.’라고.
비구들이여, 마치 숙련된 백정이나 그의 제자가 소를 도살해서 사거리의 큰길에 부위별로 해체해 놓고 앉아있는 것과 같이, 바로 이처럼 비구들이여, 수행자는 바로 자신의 육신을 (네 가지) 요소의 측면에서 관찰한다. 즉 ‘이 육신에는,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가 있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어떤)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1.6 묘지에서의 아홉 가지 관찰 [부정관(不淨觀)]
① 첫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져 하루나, 이틀이나, 사흘이 된 시체가 부풀어 오르고, 검 푸러지고, 썩어 가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② 두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까마귀, 매, 독수리, 개, 표범, 호랑이, 재칼 등에 의해서 먹혀지고, 갖가지의 벌레에 의해서 파 먹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③ 세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힘줄이 남아 있고, 살점이 붙어있는 채로 해골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④ 네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힘줄이 남아 있고, 살점은 없이 핏자국만 얼룩진 채로 해골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⑤ 다섯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힘줄만 남아 있고, 살점이나 핏기가 없는 채로 해골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⑥ 여섯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의 뼈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어, 여기에 손뼈, 저기에 발뼈, 정강이뼈, 넓적다리뼈, 골반, 등뼈, 두개골 등으로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⑦ 일곱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의 뼈가 조개껍질의 색처럼 하얗게 변해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⑧ 여덟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의 뼈가 일 년도 더되어 한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⑨ 아홉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뼈마저 썩어 가루로 되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1.7 「몸에 대한 마음챙김」의 열 가지 이익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챙김[身念; kāyagatāsati]을 거듭 닦고, 향상시키며, 계발하고, 수레(수행법)로 쓰며, 기반으로 하고, 확고하게 하며, 강화시켜, 잘 수행한다면, 다음의 열 가지 이익이 기대될 것이다.
(1) 불쾌함과 즐거움을 제어하게 되어 불쾌함이 그를 정복하지 못하게 된다. 불쾌함이 생겨날 때 (즉각 알아차림으로써) 불쾌함을 극복하며 지낸다.
(2) 공포와 두려움을 제어하게 되어 공포와 두려움이 그를 정복하지 못하게 된다. 공포와 두려움이 생겨날 때 (즉각 알아차림으로써)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하며 지낸다.
(3)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갈증, 등에, 모기, 바람, 햇빛, 기어 다니는 벌레등과 접촉할 때 견디어 내게 되며, 험담이나 불쾌한 말, 고통스럽고 통증이 심하며, 살을 예이는 듯한 괴로움이나, 뼈를 깎아 내는 듯한 괴로움, 의견의 불일치, 고뇌 그리고 생명에의 위협을 견디어 내게 된다.
(4) 어려움이나 곤란함 없이 자신의 의지의 따라서 네 가지 마음집중[四禪]을 얻을 수 있다, 사선은 마음이 정화된 높은 경지이며, 사선을 얻으면 바로 여기에서 안락하게 지내게 된다.
(5) 여러 가지의 신통력을 얻게 된다. 몸이 하나의 상태에서 여럿이 되기도 하며, 여럿인 상태에서 하나로 되기도 한다.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하며, 벽이나 사방이 가로막힌 곳을 가로질러 아무런 장애 없이 통과하기도 하고, 마치 빈 공간을 지나가듯이 산을 뚫고 지나가며, 마치 물 속으로 잠수하듯이 땅 속으로 들어가며, 마치 땅 위를 걷듯이 물위를 빠지지 않고 걸어간다. 가부좌를 한 채로 새처럼 공중을 날아가며, 손으로 달과 태양을 만질 정도로 신통력이 생긴다. 범천의 세계와 같이 멀리 떨어진 곳에까지 그의 신통력이 미치게 된다.[神足通]
(6) 인간의 귀를 뛰어넘는 청정한 천상의 귀(청각기관)로 천상과 인간세계의 소리를 듣는다. 멀리서 나는 소리나 가까이에서 나는 소리나.[天耳通]
(7) 다른 존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마치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이해하게 된다. 그는 (다른 사람의) 탐심에 물든 마음을 탐심에 물들어 있다고 알며, 탐심이 없는 마음을 탐심이 없다고 안다. 성내는 마음을 성내는 마음이라고 알며 성냄이 없는 마음을 성냄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어리석음에 덮여 있는 마음을 어리석음에 덮혀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을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인색한 마음을, 인색한 마음이라고 알며, 인색한 마음이 없어지면 인색한 마음이 없어졌다고 안다. (색계와 무색계의 선정에 의해) 고양된 마음을 고양된 마음이라고 알며, 고양된 마음이 없으면, 고양된 마음이 없다고 안다. 보다 뛰어난 마음을 뛰어난 마음이라고 알며, 보다 뛰어난 마음이 없으면 보다 뛰어난 마음이 없다고 안다. 집중이 되어 있는 마음을 집중이 되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집중이 안 된 마음을 집중이 안 된 마음이라고 안다.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이라고 알며,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라고 안다.[他心通]
(8) 자신의 수많은 과거 전생에 대해서 기억한다. 즉, 한 생이나 두 생 .....등의 과거생의 자신의 이름, 태생, 모습, 생전의 경험 내용,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 등을 기억하게 된다.[宿命通]
(9) 인간의 눈을 뛰어넘는 청정한 천상의 눈(시각 기관)으로 뭇 중생들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본다. 좋은 곳에 태어나는가 나쁜 곳에 태어나는가, 잘 생겼는가 추하게 생겼는가, 행복한가 불행한가를 보게 된다. 이처럼 그는 중생들이 자신의 행위[業].에 따라서 받게 되는 삶의 양태를 알게 된다.[天眼通]
(10) 모든 번뇌를 없애 버려서,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바로 이 생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증득해서 깨달아 완성을 이루어 지낸다.[漏盡通]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거듭 닦고, 향상시키며, 계발하고, 수레(수행법)로 쓰며, 기반으로 하고, 확고하게 하며, 강화시켜, 잘 수행한다면, 위와 같은 열 가지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 열 가지 몸에 대한 마음챙김의 이익 가운데 뒤의 여섯 가지(5에서 10까지)의 이익은 여 섯 가지 신통[六神通]을 말한다. 이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 신통은 (번뇌를 완전히 제거 하지 못한) 세간적인 조건들이어서 범부들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의 여섯 번째의 누진통은 (번뇌를 모두 제거한) 출세간적인 신통력으로서 아라한만이 지니는 덕목이다. 네 가지의 마음집중[四禪]을 이룬다면 다섯 가지의 세간적인 신통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신통력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서 네 가지 신족(神足)이 있다.
2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受念處]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즐거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괴로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괴로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육체적인 즐거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육체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정신적인(비육체적인) 즐거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정신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육체적인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육체적인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정신적인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정신적인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느낌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느낌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느낌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느낌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3 마음에 대한 마음챙김 [心念處]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탐욕이 있는 마음[有貪心]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또는 탐욕이 없는 마음[無貪心]을 탐욕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성냄이 있는 마음[有瞋心]을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성냄이 없는 마음[無瞋心]을 성냄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有癡心]을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無癡心]을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침체된 마음을 침체된 마음이라고 알며, 산만한 마음을 산만한 마음이라고 안다. (선정 수행으로) 커진 마음[大心]을 커진 마음이라고 알며, (선정 수행을 닦지 않아) 커지지 않은 마음을 커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색계 선정과 무색계 선정 수행이) 향상된 마음을 향상된 마음이라고 알며, 향상이 안된 마음을 향상이 안된 마음이라고 안다. (선정에 의해) 잘 집중된 마음을 잘 집중된 마음이라고 알며, 집중이 안된 마음을 집중이 안된 마음이라고 안다. (선정 수행에 의해 일시적으로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진 마음[解脫心]을 자유로워진 마음이라고 알며, 자유로워지지 않은 마음[非解脫心]을 자유로워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 여기에서 사용된 마음(citta)이란 마음 또는 의식의 순간들을 통틀어서 일컫는 집합적인 용어이다. 인식작용[識; viññāņa]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마음 또는 의식이라는 용어를 사고(思考; thought)라고 번역해서는 안된다. 사고(思考)와 생각함은 마음의 언어적인 작용, 즉 거친 생각[尋]과 미세한 생각[伺]에 해당하며, 형성작용의 무더기인 행온(行蘊)이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마음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마음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마음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마음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4 법에 대한 마음챙김 [法念處]
<다섯 가지 종류의 육체적∙정신적 현상에 대한 마음챙김>
4.1 다섯 가지 덮개[五蓋]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다섯 가지 덮개[五蓋]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다섯 가지 덮개[五蓋]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감각적 욕망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감각적 욕망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악의(惡意, 분노)가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악의(惡意)가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악의가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악의가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악의가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악의가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악의가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혼침과 졸음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혼침과 졸음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혼침과 졸음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우울)이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이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이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이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회한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들뜸과 회한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들뜸과 회한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회의적 의심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회의적 의심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회의적 의심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4.2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비구가 ‘이것은 물질적 현상[色]이다’, ‘이것은 물질적 현상의 발생이다’, ‘이것은 물질적 현상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감수 작용[受]이다’, ‘이것은 감수작용의 발생이다’, ‘이것은 감수작용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표상 작용[想]이다’, ‘이것은 표상 작용의 발생이다’, ‘이것은 표상 작용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형성 작용[行]이다’, ‘이것은 형성 작용의 발생이다’, ‘이것은 형성 작용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인식 작용[識]이다’, ‘이것은 인식 작용의 발생이다’, ‘이것은 인식 작용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
4.3 여섯 가지 인식 기관과 인식 대상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여섯 가지 내적인 인식 기관과 외적인 인식 대상[六內外處]이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여섯 가지 내적인 인식 기관과 외적인 인식 대상이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여기에 비구가 눈[眼; 시각 기관]을 알아차리고, 색[色; 시각 대상으로서의 모양과 색깔]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結; samyojana]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귀[耳; 청각기관]를 알아차리고, 소리[聲]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코[鼻; 후각기관]를 알아차리고, 냄새[香]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혀[舌; 미각기관]를 알아차리고, 맛[味]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몸[身; 촉각 기관]을 알아차리고, 접촉[觸]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마음[意; 사고 기관]을 알아차리고, 마음의 현상[法]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내적인 인식 기관과 외적인 인식 대상[六內外處]이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4.4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念覺支; sati-sambojjhaṅga]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 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 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擇法覺支; dhamma-vicaya -sambojjhaṅga]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 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 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精進覺支]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 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 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喜覺支; pīti-sambojjhaṅga]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 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 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輕安覺支]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 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 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定覺支]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捨覺支; upekkhā- sambojjhaṅga]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 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4.5 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諦]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諦]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네 가지 고귀한 진리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올바르게 [있는 그대로; yathābhūtaṃ]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원인)이다’라고 올바르게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올바르게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올바르게 안다.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諦]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4.6 네 가지 마음챙김의 이익 - 마음챙김 수행에 의한 깨달음의 보증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을 이와 같이 7년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不還]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7년은 그만 두어도 좋다 (7년은 걸리지 않아도 좋다).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을 이와 같이 6년간, 5년간. 4년간, 3년간, 2년간. 1년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1년은 그만 두어도 좋다.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을 이와 같이 7개월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7개월은 그만 두어도 좋다. 이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을 이와 같이 6개월간, 5개월간, 4개월간, 3개,
2개월간,. 1개월간, 반달 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반달은 그만 두어도 좋다. 이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을 이와 같이 7일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은 모든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기 위한, 괴로움과 마음의 언짢음을 없애기 위한, 올바른 길에 이르기 위한, 열반을 깨닫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바로 그것은 네 가지의 마음챙김이다라고 앞에서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연유로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세존은 설하셨다. (설법을 들은) 그 비구들은 만족해하며, 세존의 설법에 대해 환희에 찼다.
5. 결론
만일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사념처]을 7년 동안 이와 같이 수행한다면 두 가지 결과 중 한 가지를 얻는다.
지금 현재 최상의 지혜를 얻는다.
아직 집착이 남아있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단계’를 얻는다.
7년은 그만두고라도 만일 누구든지 이 ‘마음챙김 확립’을 6년이나 5년, 4년, 3년, 2년, 단지 1년 동안이라도 이와 같이 수행한다면 두 가지 결과 중 한 가지를 얻을 것이다.
지금 현재 최상의 지혜를 얻는다.
아직 집착이 남아있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단계’에 이른다.
1년은 그만두고라도 만일 누구든지 이 ‘마음챙김 확립’을 7개월이나 6개월, 4개월, 3개월, 2개월, 1개월이나 단지 15일 동안만이라도 두 가지 결과 중 한 가지를 얻을 것이다.
지금 현재 최상의 지혜를 얻는다.
아직 집착이 남아있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단계’에 이른다.
15일은 그만두고라도 만일 누구든지 이 ‘마음챙김 확립’을 7일 동안만이라도 이와 같이 수행한다면 두 가지 결과 중 한 가지를 얻을 것이다.
지금 현재 최상의 지혜를 얻는다.
아직 집착이 남아있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단계’에 이른다.
이런 이로움의 결실이 있기 때문에 이 경의 제일 처음에 말하기를
“이것은 사람들의 마음의 정화를 위한 유일한 길이다. 이것은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게 하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를 완전히 부수고 팔정도를 성취하게 하며, 열반을 실현하게 한다. 이 유일한 길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라고 하셨다.
공부가 안 된다면 그 곳을 떠나라
맛지마 니까야 : 17 와나빳타 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띠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에게 숲에서의 수행생활을 설할 것이다. 귀를 기울여 잘 듣도록 하여라.
⓵ 숲에서 수행하는 동안 아직 마음챙김에 머무르지 못하고, 아직 집중을 얻지도 못하고, 번뇌를 부수지도 못하고 속박에서 벗어나 아직 최상의 안온을 얻지도 못하고, 출가수행자가 얻어야 할 수행생활의 필수품인 법복, 음식, 거처, 의약품을 얻기 힘들다면 그는 이런 사람들을 낱낱이 돌아보고 밤이든 낮이든 간에 그 숲을 떠나야 하며 그 숲에 계속 머물러서는 안 된다.
⓶ 숲에서 수행을 하는 동안 아직 마음챙김에 머물지 못하고 아직 집중을 얻지도 못하고 전뇌를 부수지도 못하고 속박에서 벗어나 최상의 안온을 얻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출가수행자가 얻어야 할 법복, 음식, 거처, 의약품을 얻기 쉽다면 그는 이렇게 생각하여야 한다. ‘나는 마음챙김에 머무르지 못하고 집중도 얻지 못하고 번뇌를 부수지도 못하고 번뇌를 벗어나 최상의 안온을 얻지도 못하였다. 그런데 생활필수품은 얻기 쉽다. 그렇지만 나는 법복이나 음식, 거처, 의약품을 위해서 출가하지는 않았다.’라고 자신을 돌아보고 수행을 하나도 이루지 못하였음을 반조하고 그 숲을 떠나야 하며 그 곳에 계속 머물러서는 안 된다.
⓷ 숲에서 수행을 하는 동안 마음챙김에 머물고, 아직 집중을 얻고, 번뇌를 소멸하고 속박에서 벗어나 최상의 안온을 얻었으나, 출가수행자가 얻어야 할 수행생활의 필수품인 법복, 음식, 거처, 의약품을 얻기 힘들다면 그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숲에 머무는 동안 마음챙김에 머물고 집중을 얻고, 최상의 안온을 얻었다. 그런데 나는 법복이나, 음식, 거처, 의약품을 얻기 위해 출가하지 않았다.’고 자신을 반조하여 보고 그 숲에 계속해서 머물러야 하며 숲을 떠나서는 안 된다.
⓸ 숲에서 수행하는 동안 마음챙김에 머물고, 번뇌를 소멸하고, 속박에서 벗어나 최상의 안온을 얻고, 출가 수행자가 얻어야 할 수행생활의 필수품인 법복, 음식, 거처, 의약품을 얻기 쉽다면 그는 이렇게 생각하여야 한다.
‘나는 마음챙김에 머물고 집중을 얻었고, 번뇌를 소멸하였고, 속박에서 벗어나 최상의 안온을 얻었고, 출가 수행자가 얻어야 할 수행생활의 필수품을 얻기도 쉽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는 그곳에 생명이 다할 때까지 계속해서 머물러야 하며 다른 곳으로 떠나지 말아야 한다.
명상수행의 이익
맛지마 니까야 : 62 마하라홀라 경18-24
부처님께서 라홀라에게 말씀하셨다.
“자애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그리하면 악한 마음이 사라진다. [慈]
자비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그리하면 해치려는 마음이 사라진다. [悲]
더불어 기뻐함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그리하면 싫어하는 마음이 사라진다.[喜]
평정에 대한 마음을 닦아라. 그리하면 감각의 반응이 사라진다. [舍]
불결함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그리하면 어떤 집착도 사라진다.
무상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그리하면 ‘나다’라는 교만한 마음이 사라진다.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의 명상을 닦아라. 그리하면 커다란 이익과 결실을 가져온다.”
수행생활의 점차적인 순서와 단계
맛지마 니까야 : 107 가나까목깔라나 경 1-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왓티의 동쪽 승원 미가라마뚜 강당에 계셨다. 그 때 브라흐민 나가까 목갈라나가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이렇게 말했다.
“고따마 존자님, 이 미가라마뚜 강당을 지을 때도 점차작인 훈련과 점차적인 실행과 점차작인 단계를 볼 수 있습니다. 즉 계단의 마지막 단까지 입니다. 마찬가지로 브라흐민에 있어서도 점차적인 훈련과 점차적인 실행과 점차적인 발전의 단계가 있는데 그것을 말하자면 마지막 단계인 베다의 학습까지 갑니다. 회계로 생계를 유지하는 우리와 같은 회계사도 점차적인 훈련과 실행, 발전의 단계가 있는데 그것을 말하자면 마지막 단계인 회계까지 갑니다.
고따마 존자님, 이 가르침과 계율에서도 점차적인 훈련과 실행, 발전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브라흐민, 마치 현명한 말 조련사가 훌륭한 경주용 말을 얻으면 우선 말이 재갈을 무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 후에 말을 더 길들이게 됩니다. 이처럼 여래는 길들여야 할 사람을 얻으면 이와 같이 수련합니다.
첫 번째 단계 - 계행의 지킴
‘오너라, 비구여, 계행을 지키고 빠띠목차(계본)의 규율에 따라 절제하여라. 행동을 바르게 하고, 아주 작은 잘못에서도 두려움을 보며, 수련의 규칙 속에서 그대 자신을 단련하라.’고 가르칩니다.
두 번째 단계 - 감각기관을 절제함
여래는 그를 좀 더 수행하도록 이끕니다.
감각기관의 문을 절제하라.
눈으로 형상을 볼 때 나타나는 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귀로 소리를 들을 때 소리에 집착하지 말라.
코로 냄새를 맡을 때 냄새에 집착하지 말라.
혀로 맛 볼 때 그 맛에 집착하지 말라.
몸으로 촉감을 느낄 때 그 촉감에 집착하지 말라.
마음으로 대상을 인식할 때 마음의 움직임에 집착하지 말라.
왜냐하면 눈, 귀, 코, 혀, 몸, 마음을 절제하지 않으면 탐욕과 낙담과 사악한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이 침입할 것이다. 그러므로 감각기관을 절제하고, 지키고, 이것의 절제를 성취하라.’고 가르칩니다.
세 번째 단계 - 음식을 절제함
그런 다음 여래는 그를 좀 더 수행하도록 이끕니다.
먹는 것에 적당량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주의 깊게 살피면서 음식을 취하여야 한다. 음식은 먹는 것을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며, 취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육신의 아름다움이나 매력을 위해서도 아니며, 다만 그 육신을 계속해서 지탱하기 위한 것이며, 나아가서 청정한 삶을 위해서다.’라고 가르칩니다.
네 번째 단계 - 명상으로 번뇌를 맑힘
그런 다음 여래는 그를 좀 더 수행으로 이끕니다.
‘깨어있음에 전념하라. 낮의 결행[걷기 명상]하는 동안과, 앉아 명상하는 동안에 장애[번뇌]로부터 마음을 깨끗이 하라. 밤의 초야에는 경행과 앉아 명상하고 있는 동안에 장애로부터 마음을 깨끗이 하라. 밤의 중야에는 오른 쪽으로 사자처럼 누워 발을 포개고 다시 일어날 것을 생각하며 마음챙김으로 온전히 알아차린다. 밤의 후야에는 경행과 앉아 명상하고 있는 동안 장애로부터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가르칩니다.
다섯 번째 단계 - 마음챙김과 선명한 알아차림에 머무름
그런 다음 여래는 그를 좀 더 수행하도록 이끕니다.
‘마음챙김과 선명한 알아차림에 머물러야 한다. 앞으로 갈 때에도 뒤로 돌때도, 앞을 볼 때도, 뒤를 볼 때도, 팔과 다리를 굽힐 때도, 펼 때도, 가사를 입을 때도, 가사와 발우를 가져 갈 때도, 먹을 때도, 마실 때도, 맛볼 때도, 대소변을 볼 때도, 걸을 때도, 서 있을 때도, 앉아 있을 때도, 졸음이 올 때도, 잠에서 깰 때도, 말을 할 때도, 침묵할 때도 온전히 알아차려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여섯 번째 - 다섯 가지 장애[五蓋]를 정화함
그런 다음 여래는 그를 좀 더 수행하도록 이끕니다.
‘명상하기 좋은 한적한 곳으로 가라. 숲이나 나무 밑, 산비탈, 계곡, 언덕의 동굴, 울창한 숲, 노지 등으로 가라. 이런 곳으로 가서 탁발에서 돌아와 공양한 후 가부좌 하고 앉아서 허리를 곧게 세우고 마음챙김을 앞에 세운다.
- 세상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탐욕 없는 마음에 머문다. 그는 탐욕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합니다.
- 악의와 증오를 버리고 악의 없는 마음에 머문다.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자비와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머뭅니다. 그는 악의로부터 마음을 정 화합니다.
- 게으름과 무기력을 버리고 게으름과 무기력 없이 머뭅니다. 그는 마음챙 김과 선명한 알아차림에 머뭅니다. 그는 게으름과 무기력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합니다.
- 흥분과 희한을 버리고 안으로 고요한 마음으로 들뜨지 않고 머뭅니다. 그는 흥분과 희한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합니다.
- 의심을 버리고 의심을 초월하여 머뭅니다. 건전한 것에 대한 의혹을 버리고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합니다.
일곱 번째 단계 - 네 가지 선정에 머무름
이와 같이 지혜를 악하게 만드는 마음의 번뇌인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린 후에 감각적 쾌락과 바람직하지 못한 모든 것에서 벗어나 사유와 숙고가 있으며 홀로 명상함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있는 첫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사유와 숙고를 멈추고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됨이 있으며 사유와 숙고가 없이 삼매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있는 두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환희가 사라진 후 평정한 마음과 분명한 알아차림과 육신의 행복을 느끼며 머뭅니다.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평정과 마음챙김에 머무는 사람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세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고통도 쾌락도 버리고 전에 있던 행복도 불행도 버리고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에 의하여 도달한 마음챙김의 순수함이 있는 네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브라흐민이여, 이것이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였지만 속박에서 벗어나 최상의 안온을 열망하는 좀 더 높은 수련의 단계에 있는 비구들에게 주는 나의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들은 지금 여기에서의 즐거운 삶에 도움이 되며, 또한 번뇌가 부서진 아라한이 마음챙김과 선명한 알아차림에 머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잘못하는 명상의 다섯 가지
맛지마 니까야 : 108 고빠까목갈라나 경 25-2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아난다 존자는 라자가하의 죽립정사에 있었다. 그때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다. 아난다 존자는 브라흐민 고빠까목갈라나의 작업장에서 그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마가다국의 대신인 브라흐민 왓사까라가 라자가하에서 공사를 감독하다가 아난다 존자를 찾아왔다. 그는 인사를 드리고 한 쪽에 앉아 여러 가지를 질문한 후 다시 이렇게 물었다.
“아난다 존자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죽립정사에 있습니다.”
“아난다 존자님, 그 대나무 숲은 쾌적하고 조용하고 인가와 떨어져 있고 외따로 명상수행하기에 적합한 곳이지요?”
“그렇습니다. 브라흐민, 더구나 그대와 같은 관리인과 보호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난다 존자님, 그리고 그곳은 명상가인 훌륭한 분들과 명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대나무 숲은 쾌적하고 조용하고 인가와 떨어져 있고 외따로 명상수행하기에 접합한 곳입니다.
그 전에 고따마 존자님이 웨살리의 큰 숲에 있는 중각강당에 계실 때였습니다. 고따마 존자님은 저에게 명상에 대하여 여러 가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고따마 존자님은 명상가였고, 명상을 수련하셨고, 어떤 형태의 명상이든 찬탄하셨습니다.”
“브라흐민이여, 부처님은 명상을 어떻게 하든지를 막론하고 무조건 찬탄하시지도 않았고 무조건 비난하시지도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찬탄하시지 않은 명상이 있습니다.
다섯 가지 장애를 경계하심
여기 어떤 사람이 감각적 쾌락에 붙잡혀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감각적 쾌락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그것에서 벗어나는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감각적 쾌락을 마음속에 가지고 명상하면 그는 명상을 하고는 있지만 명상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악한 마음에 붙잡혀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악한 마음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그것에서 벗어나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악한 마음을 품고 명상하면 그는 명상을 하고 있지만 명상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게으름과 무기력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게으름과 무기력에 사로잡혔을 때 어떻게 그것에서 벗어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게으름과 무기력에 빠져서 명상을 하면 그는 명상을 하고 있지만 명상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희한과 들뜸에 사로잡혀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희한과 들뜸에 사로잡혔을 때 어떻게 그것에서 벗어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희한과 들뜸에 빠져서 명상을 하면 그는 명상을 하고 있지만 명상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브라흐민이여, 부처님께서는 이런 종류의 명상을 칭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어떤 종류의 명상을 찬탄하셨을까요?
사선정을 찬탄하심
브라흐민이여, 감각적 쾌락과 바람직하지 못한 모든 것에서 벗어나 사유와 숙고가 있으며 홀로 명상함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있는 첫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사유와 숙고를 멈추고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됨이 있으며 사유와 숙고가 없이 삼매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두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환희가 사라진 후 평정한 마음과 분명한 알아차림과 육신의 행복을 느끼며 머뭅니다.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평정과 마음챙김에 머무는 사람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세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고통도 쾌락도 버리고 전에 있던 행복도 불행도 버리고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에 의하여 도달한 마음챙김의 순수함이 있는 네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종류의 명상을 찬탄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아난다 존자는 말했다.
마음챙김을 어떻게 하는가?
디가니까야 : 16 마하빠라닙빠나 경 2:11-13
부처님께서 많은 무리의 비구들과 함께 웨살리로 가셔서 암마빨리 숲에 머무셨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그대들은 분명한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에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간곡한 당부이다.
어떻게 마음을 챙기는가?
열성을 다하여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마음챙김으로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걱정을 멀리하고 무상하고, 불안하고,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찬 몸을 몸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身],
느낌을 느낌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受], 마음을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心], 담마[가르침]를 담마로 있는 그대로 관찰[法]한다. ‘이것이 어떻게 마음을 챙기는가’이다.
그러면 어떻게 분명히 알아차리는가?
앞으로 가거나, 뒤로 갈 때에도, 앞을 보거나, 옆을 볼 때도, 가사나 발우를 가져 갈 때도, 몸을 굽히거나 펼 때에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아차려야 한다. 먹거나, 마시거나, 씹거나, 맛보거나, 대소변을 볼 때도, 걸을 때에도, 서 있을 때에도, 앉아 있을 때에도, 잠잘 때에도, 말할 때에도, 묵묵할 때에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아차려야 한다. 이것이 ‘어떻게 분명히 알아차리는가’이다.
마음챙김을 부지런히 해야 하는 이유
앙굿따라 니까야 4부 117
비구들이여, 네 가지 경우에서 그대들은 자신을 위하여 부지런함과 마음챙김과 마음의 지킴을 발휘하여야 한다.
내 마음이 탐욕을 일으키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탐욕을 품지 않기를.
내 마음이 성냄을 일으키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성냄을 품지 않기를.
내 마음이 어리석음을 일으키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기를.
내 마음이 열광을 일으키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열광하지 않기를.
이런 이유로 네 가지 경우에서 그대들 자신을 위하여 부지런함과 마음챙김과 마음의 지킴을 발휘하여야 한다.
수행생활에 기쁨이 없는 경우
앙굿따라 니까야 5부 56
어떤 비구가 그의 스승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님, 제 몸은 마치 약에 취한 것처럼 몽롱하고, 천지사방도 선명하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가르침도 선명하지 않고, 게으름과 무기력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수행생활을 하지만 즐거움이 없고 가르침에 의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스승은 제자를 데리고 부처님께 가서 제자의 이야기를 그대로 말씀드렸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정말 그렇구나. 수행자가 감각기관을 단속하지 않고, 먹는 데에 적당한 양을 모르고, 깨어 있지 못하고, 바른 가르침을 추구하지 않고, 매일 매일의 수행이 깨달음으로 이끄는 삶이 아니라면 마치 약에 취한 것처럼 몽롱하고, 천지사방도 선명하지 않고, 가르침도 선명하지 않고, 게으름과 무기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수행생활을 하지만 즐거움이 없고 가르침에 대한 의심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렇게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
‘나는 감각기관을 잘 단속할 것이며, 먹는 것에 적당량을 알고, 늘 깨어있고, 바른 가르침을 추구하고, 매일 매일 깨달음으로 이끄는 그런 수행을 할 것이다.’
이렇게 그대들은 자신을 단련하여라.”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
앙굿따라 니까야 8부 74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나디까에서 벽돌강당[승원]에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아라. 만약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발전시키고 연마하면 크나 큰 결과와 이익을 가져온다. 어떻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발전시키는가?
날이 저물어 밤이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성찰하여야 한다.
‘여러 가지 것들이 나의 죽음을 가져올 수도 있다. 뱀, 전갈, 지네 등에 물려서 죽을 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나에게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 걸려서 넘어질 수도 있고, 먹은 음식이 탈이 날 수도 있고, 담과 즘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고, 가래가 나와 괴롭힐 수도, 꿰찌르는 것과 같은 몸 안의 바람 기운이 나의 건강에 불편을 가져올 수도 있다. 사람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좀 더 깊이 자신을 성찰해 보아야 한다.
‘오늘 밤 내가 죽는다면 나에게 장애가 될 만한 것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바람직하지 않은 악함이라도 품고 있지는 않은가?
만일 자신에게서 아직도 버리지 못한 바람직하지 않은 악함을 찾아냈다면 이것들을 버리기 위하여 마음챙김과 선명한 알아차림과 강한 결단심과 모든 노력과 힘을 기울여야 한다.
마치 머리에 불이 붙은 사람이 그 불을 끄기 위하여 온갖 노력과 힘을 기울이는 것처럼 그렇게 자신의 나쁜 자질을 버리도록 온갖 노력과 힘을 기울여야 한다.
만일 성찰해 보아도 자신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어떤 악함도 발견하지 못하였다면 그는 밤이고 낮이고 무엇이든지 선하고 바람직한 것들을 실천하도록 노력하면서 기쁨 속에 머물 것이다.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발전시키고 연마하는 사람은 크나 큰 결실과 이익을 얻는다.”
자신을 省察함
앙굿따라 니까야 10부 51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앗띠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만일 다른 사람의 마음의 작용을 아는데 능숙하지 못하다면 적어도 ‘나는 내 마음의 작용을 아는 데는 능숙할 것이다.’라고 단련하여야 한다.
어떻게 자기 자신의 마음의 작용을 아는데 능숙하게 되는가?
그것은 마치 장식을 좋아하는 여자나 남자, 또는 젊은이들이 깨끗한 거울이나 깨끗한 물에 그들의 얼굴을 비추어 보고 흠이나 얼룩을 보면 그것을 지우기 위하여 애쓰게 된다. 만일 흠이나 얼룩이 없으면 기쁘고 만족하여 ‘좋구나. 나는 깨끗하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이와 마찬 가지로 자기를 성찰하는 것은 훌륭한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매우 도움이 된다.
1. 나는 일반적으로 탐욕스러운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2. 나는 일반적으로 마음속에 악의를 품고 있는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3, 나는 일반적으로 게으름과 무기력에 빠져 있는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4 나는 일반적으로 마음이 들떠 있는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5. 나는 일반적으로 의심을 잘하는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6. 나는 일반적으로 화를 잘 내는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7. 나는 일반적으로 나쁜 생각에 쉽게 물드는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8. 나는 일반적으로 게으른가? 아니면 활력이 넘치는가?
9. 나는 일반적으로 주의 집중에 머무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만일 이와 같은 성찰에서 자신이 탐욕스럽고, 악의가 있고, 게으르고, 무기력하고, 마음이 들떠있고, 의심을 잘하고, 화를 잘 내고, 나쁜 생각에 쉽게 물들고, 주의 집중하지 못한다면 그는 이런 이롭지 못하고 악한 성향들을 버리기 위하여 마음챙김에 머물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최선의 열성과 힘과 노력을 기울여 분발하여야 한다.
마치 머리에 불이 붙은 사람이 그 불을 끄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고 마음챙김을 분명히 알아차리고, 열성과 힘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이와 마찬가지로 그대들도 이롭지 못하고 악한 성향을 제거하기 위하여 마음챙김에 머물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최선의 열성과 힘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고운 전 만 수